[이호영의 덕후철학] 중화반점 영업방침
[이호영의 덕후철학] 중화반점 영업방침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7.01.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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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트럼프라는 북풍한설에 중국의 이는 몹시 시리다. 한류, 수출, 여행을 제한하고 군사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건 우리더러 다시 입술 노릇 하라는 으름장이다. 하지만 대국(大國)에 한없이 머리 조아리며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조공을 바치던 예의 바른 빵셔틀은 이제 더 이상 없다.

고대 주(周)나라를 ‘중국’이라하였다. ‘중국(中國)’이란 낱말은 글자 그대로 봉건제후국에 둘러싸인 나라다. 주나라의 왕은 수도 호경(鎬京)으로 제후들을 불러들인다. 모두 희씨(姬氏)성을 쓰는 친척동생들이다. 일족이 모이면 서로 ‘민증’을 까서 족보 확인하며 유대를 돈독히 했다. 왕에게 공물(貢物)을 바치고 손발을 자처하며 충성을 맹세하면 왕은 덕담과 함께 작위와 선물을 하사한다. 친척들과도 그렇게 선물을 교환했다. 이게 당시의 국제외교이자 무역이다.

이후 세력을 넓혀 한(漢)나라에 와서 ‘중국’은 ‘중화(中華)’로 변한다. ‘중’은 핵심이고 ‘화’는 문화다. 한족만이 세상의 중심이자 최고의 문화민족이라는 주장이다. 자연스럽게 중화사상에서 주변 동서남북은 야만족의 변방이라는 화이(華夷)사상이 나온다. 동네 중화요리집이 사실은 선민의식으로 꽉 들어찬 살 떨리는 장소인 것이다.

문화민족 한족은 자신과 무식한 오랑캐 남만(南蠻)·북적(北狄)·동이(東夷)·서융(西戎)을 차별했다. 우리가 바로 동이 오랑캐다. 천자(天子)는 하늘을 대신해 불쌍한 야만인을 가르쳐(敎化) 세상을 질서로 다스린다. 왕은 중원에서 변방까지 문명과 질서로 ‘온 세상(天下國家)’을 발아래에 둔다. 왕의 은혜를 입기에 ‘왕화(王化)’라 한다. 야만인조차 교화하니 중화가 온 세상을 통솔한다는 결론이다. 온 천하가 왕 아래이니 국경개념도 없다. 이게 중국적 세계정복이다.

꼭 중국만이 아니라 고대 로마도 유사했다. 문명을 지키는 오랑캐와 야만족이 있었다. 로마의 용병이던 게르만과 고트족은 문명의 친구였고 훈족과 반달족이 문명의 파괴자였다. 로마 역시 오랑캐를 울타리 삼아 문명과 문화를 자처한 일종의 중화였다. 이게 바로 팍스로마나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국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권을 갖는 모든 나라는 수평적 관계라 하였다. 하지만 청(淸)나라는 외국사신에게 바닥에 엎드려 황제에게 절하는 고두(叩頭)와 조공을 요구했다. ‘왕화’의 입장에서 서양오랑캐(洋夷)와 통상은 당연히 ‘조공(朝貢)’이다. 하지만 영국이 거부하며 통상은 깨진다. 이후 아편전쟁에서 패하며 어쩔 수 없이 수평적인 통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980년대 덩샤오핑의 외교정책인 도광양회(韜光養晦)란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후 “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崛起) 역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오늘날 시진핑의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 ‘중화’는 결코 죽지 않는다. 말투만 바꿨을 뿐이다.

조공도 현대화한다. 중국이 강하게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 선언’이 바로 현대 조공이자 충성맹세다.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은 말할 것 없고 지원 및 통상을 원하는 아프리카나라까지 ‘하나의 중국’을 천명하라고 요구한다. 무역이나 통상조차 이를 수용하는 조건이다. 절하며 충성을 맹세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내전으로 몸살을 앓던 수단까지 예외는 없었다.

트럼프가 대만 총통과 한 전화는 그래서 청천벽력이었다. 미국이 중국의 조공체계와 충성서약에 수정을 가한 것이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2007년에 카리브 해의 영연방 국가 세인트루시아가 대만을 주권국가로 인정했다. 이에 격분한 중국은 세인트루시아에 압력을 가한다. 중국은 카리브 지역 작은 나라의 선거에 개입해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10억 달러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세인트루시아에게는 돈도 압력도 먹혀들지 않자 적반하장으로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를 들어 공격했다.

“참고 기다린” “화평”은 “대국”으로 변하면서 부국강병의 이빨을 드러냈다. 이빨을 드러냈지만 북한만으로는 미미하니 우리까지 중화를 위한 입술로 돌아오라고 한다. 대국을 섬기는 소국으로 복귀하라는 것이다. 망극한 성은에 보답하는 손발 노릇을 하라고 윽박지른다(咄咄逼人).

지금 팍스아메리카나는 팍스(Pax)를 떼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메이드인 차이나가 온 세계를 교화할 문화는 못된다. 대국이니 중화니 거들먹거리지만 우리에게 보답해야 할 성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조선처럼 반식민지 소국 노릇을 할 이유도 없다. 미리부터 립 그로스 바르고 입술을 자처하지 말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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