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24 16:37
합정동 둔치에서 바라본 한강의 전경이다. 멀리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서울 복판을 흐르는 한강으로부터 얻은 지명이 한양(漢陽)이다. 아울러 북한산을 중심으로 삼아 지은 이름이기도 하다.

한양漢陽이라는 이름. 사실 할 말이 많은 명칭이다. 앞서 펴낸 <지하철 한자 여행-1호선>의 첫 장이 서울역이다. 거기서 서울의 옛 지명인 한양漢陽을 설명할 때 산의 남쪽과 강의 북쪽을 개념적으로는 陽(양)이라고 간주한다는 설명도 했다. 건대입구역을 지나면서도 잠시 거론했다. 옛 중국에서는 이른바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이라고 해서 山南水北(산남수북)을 음양陰陽 중의 陽(양)으로 적었다는 내용 말이다.

그러나 강의 흐름이 서북에서 남북으로 향하는 중국과는 달리 한반도의 큰 하천은 대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따라서 강을 보는 눈이 달라야 마땅했다. 강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한강漢江의 이북이 서울이자, 곧 한양漢陽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 하천의 북쪽은 陽(양)이라 일컫기가 불편하다. 남쪽 또한 볕이 쨍쨍하고 따뜻하다. 강물이 항상 동남쪽을 향해 넘치는 중국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수도 서울의 옛 명칭인 ‘한양’을 달고 있는 한양대학교가 있는 곳이라서 이런 역명을 얻었다. 한양대학교에 대한 설명은 필요가 없을 듯하다. 꽤 유명한 대학이고, 교세校勢 또한 대단해 알 사람은 다 아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한양漢陽이라는 그 명칭에 대해서도 지난 1호선 편, 또 건대입구역에서 제법 자세히 풀었으니 생략하는 게 좋겠다.

우선 눈에 걸리는 한자는 그 이름 앞에 들어 있는 漢(한)이라는 글자다. 이 글자는 어쩌면 오늘날의 중국인들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형성하는지도 모른다. 초기 중국 왕조 중에서 지금 중국의 아이덴티티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주체가 있다. 바로 유방劉邦(BC 256~BC 195년)이라는 인물이 창업한 漢(한)나라다.

진시황의 진秦나라에 이어서 지금 중국의 복판, 옛 중국의 중심인 중원中原에 들어섰던 왕조다. 유방이 창업에 성공한 과정은 잘 알려져 있다. 진시황의 진나라가 망한 뒤 혼란기에 접어들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항우項羽와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다가 마침내 그를 꺾고 중국의 거대 통일왕조를 이룬 사람이 유방이다.

그는 항우와 마찬가지로 정통 중원中原 사람이라기보다 남쪽 ‘촌뜨기’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옛 춘추전국 시대의 지역 분포에 따르면 그는 중원 인구가 아닌, 남쪽 초楚나라 권역에 속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출신이면서도 진시황의 진나라가 망한 뒤 세력 결집에 우선 성공했다. 라이벌이었던 항우와 옥신각신 다투다가 결국 천하 권력을 통째로 손에 넣었다.

그가 패권 장악을 앞둔 시점에 세력을 키웠던 곳이 漢中(한중)이라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가 나중에 창업한 통일 왕조의 이름도 漢(한)이라는 글자를 썼다. 그가 세력을 키웠던 漢中(한중)은 지금의 중국 산시(陝西) 남부에 있는 땅이다. 이곳에 바로 漢江(한강)이 흐른다. 그 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명칭이 바로 漢中(한중)이고, 급기야 이는 유방의 천하 패권 장악으로 인해 초기의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곳의 漢江(한강)은 漢水(한수)라고도 적는다. 길이는 1577㎞에 이르며 유역 면적은 17만4300㎢에 이른다. 한반도 한강의 길이는 약 481㎞에 유역 면적은 북한 지역 포함해 3만 4400여㎢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漢江(한강)은 매우 길고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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