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7.01.24 17:07
중국 시안 삼성전자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뉴스웍스=한동수기자] ‘일개 기업 VS 정부’, ‘12조 VS 63조’.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매섭다. 중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타도 대상으로 삼고 전투적인 물량 공세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한‧중 반도체 격차가 5년 수준으로 확대해석하고 있으나 올해말까지 5년 격차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도체 산업만 놓고 보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 한국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글로벌 반도체 정글에서 한국을 추월하려는 중국에 대해 한국이 아닌 미국이 견제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이라는 프로텍터는 세계 1위라는 입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파는 사이 한국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넛크래킹 상태로 빠져 언제든지 짓밟힐 수 있는 상황이다. 어제의 동지도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는 것이 글로벌 산업계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D램과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연초부터 경영 공백 우려를 낳고 있다. 기업인을 못살게 구는 정부의 실책에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는 상황이다.

불붙은 G2 반도체 전쟁

중국 정부는 지난 20일 올해 63조원에 달하는 반도체산업 투자를 발표했다. 같은날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있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전문가들은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 정면 승부를 예고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 반도체 굴기의 큰 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는 중국이 한국을 타깃으로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을 인수하려는 전략을 수정, 기술자립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마이크론이나 샌디스크 인수를 추진했으나 미국 정부의 방해공작에 막혔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이 곧 4차산업혁명시대의 도구이자 미래 국방산업의 우열을 가리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이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작용한 것이다.

트럼부 내각의 윌버로스 상무장관 지명자는 지난 19일(현지시간)인사 청문회에서 “오바마 행정부와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시각을 공유했다. 중국의 반도체 육성 정책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는 트럼프 정부지만 중국에 대한 반도체 견제만큼은 통하는 데가 있는 것이다.

중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비록 돌아가는 길을 택하더라도 기술 자립을 통해 직접 생산체제를 갖추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오는 2025년까지 총 171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산업 투자 계획이 이를 뒷받침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기술력은 한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고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개발 스피드를 조절해주고 있는 형국”이라며 “국내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올해가 기술 격차를 더 벌리든, 따라잡히든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만큼 설비투자 확대 등 전열을 가다듬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시점에 올해 투자계획은 물론 분기별 사업계획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현 시국이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韓 ‘반도체산업’... "2017년이 재도약위한 골든타임될 것"

LG경제연구원 김범준 연구원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특검 수사에 따른 총수 리스크를 겪고 있지만 올해 투자 계획이 빗나갈 경우 돌이킬수 없는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며 “투자계획뿐만 아니라 인력 유출 방지를 위한 정기 인사라도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공장 건설에 수십조원을 쏟아부을 예정이지만 기술력을 갖추고 공장을 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선(先)투자, 후(後)개발’ 패턴이다. 즉 일단 공장을 짓고 정상가동을 위한 제조기술을 쌓는데는 1년정도가 소요된다. 이 같은 패턴은 세계 1위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범 국가적으로 물량 공세를 펴고 있는 중국의 경우 미국 대만 일본은 물론 한국의 엔지니어들을 유치한다면 기술개발 시기를 단축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출신 엔지니어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현직 엔지니어들에 대한 보안유지와 관리는 어느정도 할 수 있지만, 퇴직자들까지 관리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며 “반도체 부문 만큼은 국가적으로 퇴직자까지 보호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사업 다각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로 압축되는 반도체 메모리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인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오히려 중국에 뒤쳐져 있는 상태”라며 “일례로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회사 수는 중국이 한국보다 10배나 많다”고 말했다.

즉 반도체 후방산업인 팹리스와 파운드리(주문 설계로 반도체 생산)업체 육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양강에만 의존할 것이아니라 설계와 생산, 메모리와 비메모리 등 전반적인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강소 반도체 업체를 육성해야 중국으로 유출되는 반도체 업계 퇴직자들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홍성수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앞으로 10년동안 치고 올라오는 중국을 어떻게 막아내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 반도체 산업의 지위가 확정될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억제하고 있는 이 시기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