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동우기자
  • 입력 2017.02.01 13:19
<사진=강봉균 페이스북>

[뉴스웍스=김동우기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경제사령탑’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며 위기 극복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향년 7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 브레인’으로 불렸던 강 전 장관은 전윤철 전 감사원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호남출신 경제관료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한 경제 관련 활동을 이어왔지만 3년전부터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 건강상태가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194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강 전 장관은 1961년 군산사범학교(현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64년 서울대 상과대학에 다시 입학한 후 1969년 행정고시 6회에 합격하며 경제관료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미국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 한양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40여년간 경제전문가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 경제사의 산증인 역할을 도맡아왔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노동부 차관과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경제기획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경제수석비서관,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았다. 2001년부터는 한국개발연구원장도 지냈다. 2002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경제공약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2년 상반기 16대 국회 재보궐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북 군산에서 출마해 당선됐으며 2004년 17대,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각각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다. 그러나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보좌관 비리, 본인 및 아들 병역 기피 문제가 불거지면서 민주통합당을 탈당하고 불출마 선언을 한다.

이후 2013년에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의 경제 자문역을 맡으며 정계에 복귀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깜짝 영입돼 주목받았으나 공천파동으로 새누리당의 총선 결과가 참패로 나타나자 선대위원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했다. 최근까지 대한석유협회 협회장을 지냈다.

경제관료로써 강 전 장관의 가장 큰 공적은 IMF 위기극복을 꼽을 수 있다. 당시 강 전 장관은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경부 장관을 연이어 맡으며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 부문 구조조정 계획의 수립과 실행에 앞장섰다.

특히 금융과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을 중점적으로 추진했으며 대기업들의 중복‧과잉투자를 방지하고 주력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IMF 이후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 발급 규제를 대거 풀어주면서 신용불량자가 폭증해 '신용카드 대란'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강 전 장관은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경제정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총선에서는 경기 대응을 위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증권(MBS) 직접 인수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해 11월 외환위기 당시 경제 수장들의 기록인 '코리안 미러클4' 발간 보고회에도 참석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