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호기자
  • 입력 2017.02.01 17:06
일본 삿포로 아파 호텔 전경. <사진=APA호텔홈페이지>

[뉴스웍스=이상호기자] 대한체육회가 일본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 숙소를 변경해달라고 지난달 31일 대회 조직위에 공식 요청했다. 조직위에서 한국 선수 100여명에게 배정한 숙소가 문제의 ‘아파 호텔’(APA Hotel)이었기 때문이다.

조직위에 숙소 변경을 요청한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한국보다 먼저 숙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은 중국이다. 한‧중 양국에서 일본의 아파 호텔에 문제제기를 한 것은 뿌리 깊은 과거사 때문이다. 아파 호텔 객실에 일본군 위안부와, 난징대학살 등 과거 군국주의 시대 일본의 만행을 부정하는 서적이 배치돼 있었다.

처음 이 사실을 알린 것은 이 호텔을 이용한 중국인 관광객이다. 그는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자신이 묵었던 아파 호텔에 극우서적들이 비치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렸고 중국 사회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당시 객실 책상 서랍에는 호텔체인의 최고경영자 모토야 도시오가 저술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국가론’, ‘자랑스러운 조국 일본, 부활로의 제언’ 등의 서적이 배치돼 있었다. 이들 서적에는 일본군 위안부 및 난징대학살의 존재 사실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날조한 거짓말이라는 주장이다.

모토야 도시오는 일본의 유명 극우 정치인 다모가미 도시오 등과의 친분도 과시했다. 그의 저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국가론’ 표지는 다모가미 도시오와 함께 찍은 커다란 사진으로 장식돼 있다. 다모가미 도시오는 우리나라의 공군 참모총장격인 항공막료장이었는데 일본의 과거사를 부인하고 미화하는 논문을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경질됐다. 이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태가 확산된 뒤 아파 호텔과 일본 정부가 보인 태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문제가 커지자 조직위는 호텔 측에 서적 철거 의사를 타진했지만 호텔 측은 ‘철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그룹 홈페이지에 “지적된 서적은 진짜 일본의 역사를 널리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일방적인 압력에 의해서 주장을 철회하는 것은 허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하며 철거 요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는 공식 대응을 꺼렸다.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부 부장관은 지난달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측 발언이나 보도에 대해선 일본 정부로서 하나하나 코멘트하고 싶지 않다”면서 ‘미래지향적 자세’를 강조했다. 앞서 중국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이 “일본에서 일부 세력이 계속해서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심지어 역사를 부인하며 왜곡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중국 내 반일 감정이 커진 상황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러면서 하기우다 관방부장관은 “민간호텔이 이런저런 고객 서비스의 일환으로서 둔 잡지의 하나라고 생각하므로 그 속까지 정부가 들여다보고 둬서 좋은 건지 두지 말라든가 이런 것을 일본 정부로서 발언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파그룹은 지난 25일 "조직위가 요청할 경우 서적을 객실에서 치우겠지만 기본적으로 서적을 배치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중국)정부가 한 민간 기업의 활동을 개별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의문을 느낀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중국 사회에 아파 호텔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중국 정부 차원에서 아파 호텔을 이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 직접적 대응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됐다.

또한 일본 관광업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중국에 반일 감정이 퍼지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일본을 가장 많이 찾은 것은 중국인이었다. 673만명이 방문했는데 전체 일본 관광객의 28%에 해당한다. 또 일본에서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유행어 10개 중에 ‘바쿠가이’가 들어갔는데 이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폭발적인 소비’를 의미하는 단어다.

이번 사태가 동계아시안게임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올림픽과 과거사의 묘한 콜라보다. 

고대 올림픽이 8년 주기에서 4년 주기로 바뀌게 된 건 그리스와 스파르타가 올림피아제(제사)를 명분으로 지난한 전쟁을 멈추고자 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주최국 차원에서라도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면 논란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 전국에 413개 호텔을 둔 아파(APA)그룹 이름의 뜻은 ‘Always Pleasant Amenity’(언제나 편안한 시설)다. 하지만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피해국들에겐 ‘Anti-Peace Area’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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