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기대(Nikolay Dubovskoy)
[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기대(Nikolay Dubovskoy)
  • 김수정
  • 승인 2017.02.0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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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너무나 완벽하면 인간미가 없다고 한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아서일까.

내게 떠오른 파아란 그림 한 장을 어루만진다. ‘무지개’라는 제목을 가진 니콜라이 두보브스코이의 그림을 나는 무척 사랑하는데, 감정의 사면초가 가운데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 같아서이다.

Nikolay Dubovskoy <Rainbow> 1892


망망대해 위에 조각배 하나와 사람이 있다. 배는 텅 비어 있고 사람은 일어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구겨진 셔츠와 헐렁헐렁한 바지, 덥수룩한 수염을 한 그의 시선 끝에는 뭉게구름과 영롱한 무지개가 있다. 드넓은 바다와 거대한 하늘 아래에 사람과 배는 작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 작은 사람은 하늘에 스민 무지개 색채에 압도될 것 같다.

니콜라이 두보브스코이(Nikolay Dubovskoy, 1859~1918)의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색이 가득한 대기다. 화가는 인생 후기에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미 그의 작품에는 초기부터 빛이 가득했다. 이미 인상주의와 같은 결을 가진 작가였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화가의 그림에서 터너 같은 낭만주의 풍경화의 느낌을 먼저 읽는다. 두보브스코이의 그림은 아이작 레비탄의 그것과 함께 "분위기의 풍경(Landscape of Mood)"으로 불린다니 이 해석이 그리 억지는 아닐 것 같다.

두보브스코이는 원래 군사학교를 다니다가 이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로 진학하면서 과감히 진로를 전향한다. 이동파의 창립 멤버였던 미하일 클로트에게 배웠던 때문인지, 두보브스코이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 졸업생의 전형적인 진로를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예술가에게는 반골 기질이 있다고 하는데 두보브스코이 역시 반골 기질이 있었나 보다. 자연스럽게 화가는 이동파(移動派, Peredvizhniki) 전시에 참여하였으며, 1886년에 정식 회원이 되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화가는 이동파의 차기 리더 격인 니콜라이 야로센코와 일리야 레핀과도 가까워졌다. 야로센코의 사망 이후 이동파의 리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두보브스코이의 그림에는 시간에 대한 명시가 없다. 나는 이 그림이 무지개가 뜬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을 그린 것이라기보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에게 서서히 나타난 무지개를 그린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목이 메고 가슴이 답답할 때, 마음이 사면초가에 처해 막막할 때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감정의 사면초가 상태, 하늘이라도 바라보지 않으면 숨통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아서일 것이다. 가끔은 하늘이 아니라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하늘은 침묵하는데도 하늘을 바라보면 뭔가 풀릴 것처럼, 하늘에 부탁하면 뭔가 뚝 떨어질 것처럼 하늘을 바라본다. 대개 하늘은 아무것도 내어놓지 않고 담담히 침묵하지만 가끔 환하게 웃으며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 있다. 하늘밖에 올려다볼 수 없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가 펼쳐지는 순간이 있다. 하늘에서 놀라운 선물이 뚝 떨어질 때가 있다. 생이 나를 연민하는 순간이다. 생이 나에 대한 애정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나는 무지개가 뜬 하늘을 조금 늦게 올려다보는 사람보다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무지개가 뜨는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이고 싶다. 먹구름이 걷히고 무지개가 나타나는 순간순간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아마 그 순간은 하늘을 자주 바라보는 사람에게 다가올 확률이 높을 것이다. 비록 막막해서 하늘을 바라본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 담담히 내뱉을 수밖에 없다.

"이 기대 없이 올리는 하소연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말입니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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