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2.09 09:31

"세계 최고의 남편감은 누구인가?"

나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권력, 지식, 재력 모든 면을 다 갖춘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파트너십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부통령 조 바이든과의 감동적인 '브로맨스' 이야기뿐 아니라 오바마와 백악관 직원들과의 신뢰관계는 유명하다.

가족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나와 내 친구들이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부부에게 열광한 이유는 두 사람의 '동등한 파트너십'이 있어서다.

대부분의 퍼스트레이디가 남편의 그늘에서 전통적 여성 역할을 따랐다면 미셸 오바마는 색다른 모습으로 양지에 나섰다. 공적인 자리에서 남편과의 균형 있는 애정을 감추지 않았으며, 유머감각과 패션 감각을 적극 활용했다. 동화 구연을 하거나 랩을 하거나 춤을 추는 등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빼지 않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연설할 수 있는 능력을 적재적소에 사용했다.

유색인종으로서의 정체성과 편견이 있는 사회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으며, 말과 행동으로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했다. 건강함과 체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지성과 감성을 균형 있게 사용할 줄 알았다.

버락 오바마는 공적인 자리에서 미셸 오바마를 최고의 존경을 가지고 대했고, 아내가 본인보다 나은 능력을 가졌음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오바마에게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보이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의 사회적인 성공을 보조하기 위한 도우미 역할이거나, 사회적인 성공을 확인하기 위한 역할로서의 미인(트로피 와이프)이 아닌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돕는, 서로를 존경하고 고마워하는 이상적인 배우자상이 드러난다. 두 사람은 눈 높이가 같은 사람들이다. 이상이 현실이 된 사람들이 '프레지던트'와 '퍼스트레이디'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세계인들은 그들에 열광하고 자신들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Charles W. Hawthorne <The Lovers>

미국의 풍속 화가이자 인물 화가였던 찰스 웹스터 호손(Charles Webster Hawthorne, 1872~1930)의 인물화에는 특징이 있다. 지나치게 볼륨을 강조하지 않은 인체와 역동적이지 않은 인물의 포즈다. 처음 호손의 그림을 보았을 때, 동양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얇은 느낌이 들면서 외곽선 부분을 단정하게 마감하는 인물의 모습이 담백함을 준다. 

화면에 블랙이 등장하지만 빛과 어두움을 극적 효과로 만들기보다 화면을 정제하는 데 신경을 쓴다. 역시 블랙을 잘 사용했던 그의 스승 윌리엄 메릿 체이서에게 사사했으며, 벨라스케스와 에두아르 마네를 좋아했던 화가의 그림에 어두움의 사용이 이처럼 적절한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의상 역시 지나치게 두드러지는 화려함 없이 담백하고 검소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화면에 강렬한 색감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깊이 침잠하는 침묵이 있다.

찰스 웹스터 호손의 ‘연인’ 그림에는 화가가 가진 장점들이 잘 드러나 있다. 길고 긴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는 남과 여의 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연인이었던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해 성경과 신화의 수많은 연인들, 예술 작품들이 만들어낸 극적인 사연을 가진 연인들이 그림과 조각, 공예품으로 남았다. 그러나 대부분 작품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구애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거나, 연약한 여성이 강인한 남성의 도움을 받는 모습이다. 

호손의 <연인>은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이거나 일방적인 도움을 얻는 모습이라기보다 같은 땅 위에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함께 서 있는 모습이다. 사랑의 기쁨이나 달콤함보다 오히려 두려움이 느껴지는 이 그림을 내가 사랑하는 이유는 두 사람의 눈높이 때문이다. 두 사람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해 있지 않으나 두 사람의 몸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앞선 여성은 담담하게 앞을 바라보면서 오른손을 분홍 꽃으로 가져가고 있다. 여성의 왼손을 꼭 쥔 것은 뒤에 꼭 붙어선 남성의 왼손이다. 화가는 섬세한 필치로 꼭 잡은 두 손을 강조한다. 힘과 감정의 균형이 잘 맞아떨어진 손이다. 이러한 균형은 이상적인 연인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화가의 아내 매리언 켐벨 호손 역시 화가였는데, 이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아내였다면 서로 애정과 존경이 가득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화가의 사후, 아내 화가는 그의 교육법을 담은 책을 엮어 출간했다고 하니 이 추측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화가 아내는 화가 남편이 그리는 그림의 가치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고, 미술교육자로서 가진 교수 정신과 교수기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역학에서는 운명을 바꿀 기회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이 '배우자의 기회'라고 한다. 타고난 생시는 바꿀 수 없고, 부모와 형제는 어찌할 수 없으나, 배우자만은 새로운 운명을 여는 만남의 기회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 좋은 모델이 있다. 이렇게 같은 눈높이에서 지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것을,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의 '동등한 파트너십'을 보면서 한 번 더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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