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2.13 11:05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君子)'에 대한 내용을 강조한다. '군자'는 유교에 있어 높은 지식과 인간다움의 덕을 함께 갖추었으며 마음가짐이 넓은 인물을 의미한다. 반면 '소인'은 세상에 매여 이익에 관심을 갖고 마음가짐이 좁은 인물을 뜻하여 군자와 대비를 이룬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군자'와 같은 인물이 되기를 권하며, 군자가 지도자로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며 '군자의 도'를 강조했다.

공자의 가르침은 지도자나 통치자에게 초점이 가 있으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존경하는 정치철학 선생님이 "소시민의 덕은 군자의 덕 만큼이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말을 전해준 적이 있다. 덕분에 이제 나는 '군자의 도'보다 '소인의 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휩싸여 하루하루 악착같이 살아가는 세속적인 인간이 품는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존 슬론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세속적 인간의 성실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 슬론의 세속적 도시 풍경과 그 사이의 순간을 바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다.  

John French Sloan <Sunday, Women Drying Their Hair> 1912

미국의 화가 존 프렌치 슬론(John French Sloan, 1871~1951))은 회화뿐 아니라 각종 판화 기법을 활용한 삽화에도 능했다. 신문의 시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그의 경력을 감안했을 때, 화가의 시선이 늘 인간의 일상에 밀착했을 것은 예상할 만한 일이다. 슬론은 주로 노동하는 여성과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였으며, 빽빽하고 소란한 도시 가운데 인간이 엮어내는 따뜻한 치열함을 담았다. 슬론이 그린 도시 풍속화는 꾸밈없이 소박하고 사실적이다. 슬론처럼 20세기 초 미국의 도시 생활 풍경을 그린 화가들을 '애시캔파(派), (The Ashcan School)'라고 부른다. 슬론은 애시캔 파 외에도 8인회(The Eight)에 참여하며 미국 미술을 활장하는 데 적극적으로 임했다.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ue)의 미술교육자로서도 열심을 다한 것은 물론이다.

John French Sloan < A Woman's Work> 1912

도시란 돈이 모이는 곳이고 그런 성격상 무엇보다 세속적이다. 화가는 뉴욕에 머물러 살면서 풍요와 빈곤이 절묘하게 뒤섞인 도시를 날카롭게 관찰했다. 세속적인 삶에 매인 인간들의 인간성을 관찰해 그림으로 만들었다. 아름답다기보다 격식 없이 편안한 인물의 모습은 각자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여성들의 흐트러진 모습과 햇빛에 일그러진 표정, 신발을 반쯤 벗거나 벗어던진 모습에서는 생동감과 긍정성이 느껴진다. 엄청난 빨래를 능숙하게 널며 빨래집게를 입에 문 주부의 모습에서는 노동이 손에 잘 익은 노련함이 느껴진다. 빨래 바구니를 손에 쥔 채 황혼을 바라보는 여성의 뒷모습에서는 삶에 대한 경이와 일상에 대한 겸손함이 느껴진다. 이런 아름다움이야말로 삶에 휘감겨 살아가는 작디작은 인간의 덕(德)이 아니던가. 적어도 나의 생각은 그렇다.

John French Sloan <Sunset, West Twenty-Third Street> 1906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약간 명의 리더와 그를 따르는 수많은 팔로워들이 움직이며 삶과 시간이 흘러간다. 그 아무리 대단한 도(道)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리더로 만들 수는 없다. 모두가 군자가 되는 이상적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세계에나 몇 군자와 수많은 소인은 공존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道)보다 소인의 덕(德)이 더더욱 중요한 것이 아닌가. 아마도 나와 당신의 몫일 소인의 덕(德)을 가꾸고 사용하는 일만큼 훌륭한 일은 없다. 세상은 별수 없이 불완전한 법이고 그러기에 '소인'은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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