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7.02.19 17:00

[뉴스웍스=한동수기자] 우리는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연일 TV생중계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7일 뇌물공여에 더해진 횡령과 국외재산도피 등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이 부회장에게는 법원이 판단한 혐의 이외에 지울 수 없는 또 다른 혐의가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이 부회장의 구속은 대다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치외법권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의 상징이 삼성이며, 그 곳의 수장이 본인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재벌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총수가 구속되지 않은 ‘관리의 삼성’이라는 상징성이 오히려 부메랑이 된 것일 수 있다. 혹자는 말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열일 제쳐두고 먼지털 듯 수사하는 것을 보면, 범죄를 단죄하겠다는 것을 넘어서 뭔가 기록을 만들고 싶어하는 선수들 같았다는 것이다. 역사를 바꿔보겠다는 감정이입, 혁명가적 도그마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부회장 구속은)해낼 수 없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 산물이 이 부회장의 2차 구속영장에 명시된 50억원 이상일 경우 10년이상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는 국외재산도피 혐의 추가다. 특검은 삼성이 재단 기부금을 포함해 최순실 측에 건네 준 총 433억원 가운데 78억원이 금융당국에 신고없이 독일로 곧바로 송금된만큼 (이 부회장에게)국외재산도피 혐의가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 부회장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부한 돈을 포함해 삼성이 최순실측에 보내 준 433억원의 일부라도 뇌물공여로 인정했다면 형량이 무거운 국외재산도피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을 수 있다. 실제로 특검은 1차 구속영장 청구시 국외재산도피 혐의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또 이 부회장과 삼성측 변호인단이 뇌물공여를 인정했다면 만약 구속이 되더라도 형량은 5년이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이 부회장에게는 두 가지 갈림길만 있었다. 뇌물공여죄를 인정할 것인지, 아닌지. 후자일 경우 형량이 무거운 국외재산도피 혐의는 추가되지 않았거나, 추가되더라도 무혐의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불과 수년전만해도 뇌물공여죄는 공여자가 인정할 경우 불기소가 관행이었을 만큼 큰 죄가 아니었다”며 “뇌물공여죄는 필요공범이라고 하는 뇌물수수자가 있어 수수자 처벌만으로 법 정신이 완성됐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는 쪽이 받는 쪽을 찾아가거나 줄을 대고 금품을 줬다면 뇌물죄는 명징해진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대구까지 내려가 이 부회장을 처음 만났고(2014년 9월), 나머지 2번(2015년 7월25일 , 2016년 2월)은 청와대로 이 부회장을 불러 만났다.

이 같은 정황을 볼 때 특검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뇌물공여혐의에 대한 인정(자백)을 끌어내려고 국외재산도피 혐의까지 꺼내들었을 가능성도 추론해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이 형량이 높은 국외재산도피 혐의를 피하기 위해 뇌물공여를 자인할 경우, 필요공범은 박 대통령이 된다. 뇌물수수죄 성립시 탄핵은 기본이고 형량은 (1억원이 넘으면) 10년이상 무기징역이다.

이번 이 부회장의 구속은 삼성 총수도 죄가 있으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데 의미가 없다고 할 순 없겠다. 그러나 찜찜한 것은 이번 삼성 총수 구속이 여론에 압도된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탄핵에 성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정해놓고 보여주기식 선례를 만드는데는 성공했지만 사회적으로 감당해야할 비용또한 적지 않다.

당장 삼성의 신입사원 공채가 연기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해마다 20만명정도 지원해온 공채가 연기될 경우, 올해도 삼성공채를 준비했던 취업준비생들 사이에는 일대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삼성은 이제 전장(電裝)사업진출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총수의 구속으로 사업계획 차질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건만큼은 삼성 입장에서 억울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관행처럼 이어져 온 권력자의 요구가 먼저였다는 논리다. 사법부가 공판중심주의를 선언해놓고 굳이 구속수사까지 할 만한 사안이냐는 아쉬움을 제기하는 부분이다.

이 참에 정경유착 고리를 확실히 끊어야한다. 뇌물죄의 형량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가 갖고 있는 법 정신은 공여자보다 수수자에게 더 큰 처벌을 부과한다.

현행 제도상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정부의 각종 규제의 칼을 쥐고있는 대통령이 기업인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인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차기 대통령은 기업인과 고리를 끊겠다는 선언이라도 하고 취임해야 한다. 또 이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장치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업인이라고 돈주고 뺨맞는식의 처벌을 받아선 안된다. 기업인만 단죄해선 정경유착 척결은 고사하고,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이 부회장은 왜 끝까지 뇌물공여죄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전략의 실수였다고 하기에 삼성 법무팀은 너무 막강하다. 그렇다면 무죄를 확신했을 수도 있겠다. 달라고 해서 줬더니, 이런저런걸 해주겠다고 하는데 마다할 명분도 없었을 수 있다. 지나친 거절도 상대를 불쾌하게할 수 있다는 것은 일상에서도 흔한 일이다. 하물며 권력자 앞에서 라면...

삼성은 이 부회장 구속 후 “재판에서 진실이 가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무엇이 진실이든 제대로 명확하게 밝히길 바란다. 79년만에 처음이라는 삼성 총수의 구속이 대한민국 정경유착 역사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무엇인가는 꼭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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