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2.20 09:39

누구나 위기의 순간이 오면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업무의 과중함이 버거운 순간,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온 순간, 건강의 문제가 생긴 순간 꼭 연락하고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여기에 좀 다른 존재가 긴요히 필요한데, '내 머리를 잘 아는 헤어디자이너'에 대한 의존이다.

머릿결이 굵고 건강한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힘없는 사람들이 겪는 고민을 잘 모른다. 나도 한때는 굵고 힘 있는 머리카락의 소유자였다. 이제는 옛일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가늘가늘하고 힘없는 머리카락이 내 것이다. 염색은 애초에 끊었는데도 파마조차 되지 않아 난감하기 일쑤였다. 강남의 유명 미용실에서도 시술 이틀 만에 열펌이 풀려 두 번째 펌을 하고 나니 머리가 어디 탄 듯 부스러졌다. 포기하고 일 년 반을 묶은 머리로 지냈다.

그런 내 머리를 구원해준 것이 S 미용실의 S 선생님이었다. 잘한다는 소문에 속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S 선생님은 약 5년 만에 처음으로 내 머리에서 컬을 뽑아냈다. 선생님은 머릿결이 약품에 반응하는 속도와 모양을 유심히 관찰하고 약품과 시간을 조절했다. 이후 4년 정도 S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당시 S 선생님은 아이가 어려서 근무시간도 짧고 불규칙했다. 아이를 낳으러 들어간 일 년간은 생으로 버텼다. 만나기가 어려웠지만 나에게는 S 선생님뿐이었다. 아니, 나 말고도 그런 고객이 엄청 많았다. 예약을 걸기가 무척 어려웠으니까.

그런 S 선생님이 드디어 개인숍을 냈다. 바로 예약하고 개업하기를 기다려 머리를 했다. 처음 가 보는 낯선 동네에 모험하듯 다녀온 하루가 즐거웠다. 이런 나처럼 소중한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을 가진 모든 분들께 베르트 모리소의 <헤어드레서> 그림을 소개하고 싶다.

Berthe Morisot <The Hairdresser> 1894

베르트 모리소(Berthe Morisot, 1841~1895)는 프랑스 로코코의 거장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증손녀인 동시에 프랑스 인상파의 아버지 외젠 마네의 숨겨진 연인으로 유명하다. 날카롭고 이지적인 얼굴과 깊이 있는 눈빛의 외모와 달리 모리소의 그림은 부드럽고 풍부하며 유연하다. 마네에게 여자 제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상파 화가들은 모리소에게 흥미를 가졌고, 명망 높고 재력 있는 집안의 다재다능한 화가는 자연스레 인상파에 합류했다. 베르트 모리소는 메리 카사트와 함께 가장 유명한 인상파의 여자 화가로 남았다.

인상주의의 마네와 자연주의의 코로에게 배웠던 모리소는 스승의 장점을 흡수해 자기화했다. 선진 의식을 갖춘 집안 출신이었고 자주적인 의식을 가진 여성이었지만 마음처럼 몸은 자유롭지 못 했다. 아직 19세기라 화가는 다른 남자 화가들처럼 거리의 표정보다 실내의 풍경, 특히 여성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헤어드레서> 역시 그런 그림 한 장이다.

흰옷의 여인은 굽실굽실한 검은 머리를 헤어드레서에게 맡기고 있다. 흰옷은 편안한 실내복 같지만 부채와 그림 액자로 장식한 벽은 이곳이 집이 아닐 것 같다는 예상을 하게 한다. 오히려 하녀의 복장이 아니라 코르셋 티가 나는 야외복을 한 헤어드레서의 모습이 그 추리를 더욱 믿음직스럽게 한다. 미용실에 가면 가운을 주듯이 이 여자도 하얀 가운을 입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미용실을 부르는 데 흔히 쓰이는 '살롱'은 프랑스의 고급 미용실에서 유래했다. 귀부인이 상류 계층의 토론과 예술의 공간으로 열었던 것이 살롱이다. 프랑스에서는 1800년 중반대에 이미 미용실이 등장했다. 1913년부터는 고급 미용실도 살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니, 베르트 모리소 같은 상류계층이 다닐 수 있는 곳이 미용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림은 명확한 터치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터치로 가득하지만 부드러운 헤어드레서의 손길과 익숙한 고객의 표정만큼은 충분히 읽힌다. 두 사람은 머리카락을 매개로 익숙한 사이이다. 편안히 머리를 내어맡길 만큼 신뢰가 쌓인 관계다.

"내 머리를 알아주는 사람"의 가치는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헤어디자이너는 직업상 이동이 잦은 사람이 많다. 그래서 헤어디자이너는 자기 카페를 열기도 하고 카카오스토리를 운영하기도 하면서 고객에게 자기 존재를 알린다. 역으로 마음에 꼭 맞았던 헤어디자이너를 잊지 못해 네티즌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나로서도 S 선생님 개인번호보다 더 열심히 전화번호를 얻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은 없었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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