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동우기자
  • 입력 2017.02.21 18:21

[뉴스웍스=김동우기자] ‘역대 최고치’를 돌파한 한국은행의 21일자 통계자료 두 가지가 화제다. 하나는 지난해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긁은 카드 사용액이 16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자료이고, 하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1344조원을 돌파하며 역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자료다.

얼핏 보면 참 모순되는 통계가 아닐 수 없다. 빚은 점점 쌓여 가는데 우리 국민들은 해외로 나가서 돈을 펑펑 쓰고 있는 것 같다. 이 통계를 보도하며 몇몇 언론은 ‘내수는 부진한데...해외 나가서는 펑펑’이라는 헤드라인을 썼다.

그러나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카드 사용액 증가율(7.8%)은 출국자 수 증가율(15.9%)보다 낮았다. 이는 출국자 1인당 해외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여행수지 중 여행지급 규모가 소폭 증가에 그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여행지급 규모는 2015년 252억7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66억4000만달러로 5.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해외에서 사용된 카드 수도 4692만1000장으로 전년 3842만4000장보다 28% 증가했지만 카드 한 장당 사용금액은 345달러로 전년 대비 15.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은의 자료에 따르면 출국자가 늘어나면서 카드 사용액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으로, 우리 국민은 지난해 해외에 많이 나갔을 뿐 많이 쓴 것은 아니다.

씀씀이가 줄어든 것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8년 143%에서 지난해 말 174%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는 가계가 1년 동안 벌어들인 돈에서 세금, 보험 등 의무지출을 빼고 남은 금액을 온전히 빚 갚는 데 써도 74%가 계속 부채로 남아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을 장려한다 해도 과연 내수가 살아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3%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간소비가 중심인 내수가 위축되면서 경제 성장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용부진과 물가상승 등으로 가계 실질 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자 심리지수도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93까지 추락했다.

더 큰 문제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8월 DTI와 LTV를 완화한 여파다. 저금리 정책으로 이자 부담은 줄었지만 가계부채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키워갔다. 탄핵정국에 정부의 정책 공백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당분간 내수 부양책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은 아직도 노동을 중시하고 여가를 천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 같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적당한 여가와 휴식이 있어야 노동생산성도 높아진다. 해외여행도 이제 외화유출이라는 편협한 시각으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해외여행이 늘면 국내 여행사와 항공사도 활기를 띤다. 최근 항공사들의 국제선 취항이 증가한 것도 해외여행 수요가 뒷받침된 덕분이다.

따라서 해외여행이 늘어난다고 무작정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여유 있게 쓸 수 있도록 실질소득을 늘려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가계부채 해결이 시급한 이유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