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3.06 10:00

"밤 사이 봄비가 내리고 나면, 내일부터는 꽃샘추위 커밍!"

출근 준비를 하는 일요일 늦은 밤, 스마트폰 앱은 '푸시' 하며 내일 날씨를 알린다. 날씨란 게 참 얄궂다. 푹 쉬어도 되는 주말은 완연한 봄날처럼 환하고 맑았으면서 하필 꼭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은 추울 거라며 사람을 위협한다. 이렇게 차가운 바람이 수이 떠나갈 줄 모르면 누구나 자연스레 봄날을 기다린다.

날씨는 꼭 인생 같다. 해가 뜨면 곧이어 어둠이 오고, 달이 차오르면 달이 진다. 어둠 가운데 별이 빛난다. 궂은 날이 가면 맑은 날이 온다. 그리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인생 역시 차고 기울었다 다시 높이 오른다. 이 어수선하지만 자연스러운 시간의 순환 때문에 사람은 날씨와 계절을 보며 때로 절망하고, 때로 위로받으며, 때로는 설레 한다.

사람들은 유난히 봄날을 사랑한다. 살아 있음의 본능인 것 같다. 화가들도 봄날을 사랑한다. 그들의 날선 본능은 계절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계절의 본질은 색채가 아닌가. 봄날을 '분홍과 연두의 시절'이라고 명명하는 나는 유난히 봄의 색채를 표현하는 그림들에 빠져든다.

Henri Lebasque <Flowers & Plants> 1914~15. Oil on canvas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앙리 르바스크(Henri Lebasque, 1865~1937)의 ‘꽃과 식물(Flowers & Plants, 1914~15)’을 보라. 분홍과 연두와 노랑과 보라가 한가득이다. 하얀 양산을 쓰고 봄의 정원으로 나서는 여성과 아장아장 분수대로 향해 가는 아이는 평화로운 한때를 만끽하고 있다. 앙리 르바스크는 늘 평화를 가르쳐 준다. 봄날의 색채와 봄날의 광선에 천착한 화가는 많지만 르바스크의 그림은 봄날의 기쁨이 '평화'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한다. 봄이 드러내는 색채는 냉기를 거둘 뿐 아니라 예민한 피부와 차가운 시선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다. 봄에만 누릴 수 있는 평안과 기쁨이 있다.

르바스크는 태생적으로 색채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의 절친은 모두 컬러리스트 중의 컬러리스트였다. 르바스크는 나비파의 중심인물이며 앵티미스트인 보나르와 친밀히 지내면서 나비파(상징주의와 문학 운동의 영향으로 신비적인 분위기의 사색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색채 감각과 앵티미즘(인상파 이후 따뜻한 실내 풍경을 그린 화가들)의 친밀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화가의 색채 감각이 더욱 발달하게 된 것은 야수파의 창시자와 다름없는 마티스와의 만남이었다. 마티스는 고유색에 매이지 않고 화가의 감정을 통해 색을 재해석해 표현하고자 했다. 색채에 대한 정열을 지닌 화가들은 마티스에게 끌렸고 그들의 색채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사람들은 그를 '야수파'라 부르기 시작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앙리 르바스크(Henri Lebasque)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자신의 이름을 가진 서로를 호명하며 어떤 친밀함을 가졌을까. 1903년 두 사람이 동업해 살롱 도톤(Salon d'Automne)을 세운 것을 보면 이들의 관계는 확실히 특별했다.

르바스크는 꽤 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개 햇살 가득한 정원의 풍경이나 따뜻한 실내, 그 안에 머문 화가의 가족을 그렸다. 화가의 그림을 보면 성품도 드러난다. 화가의 성격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밝고 편안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제나 봄날처럼 다정한 화가였을 것 같다.

고백하건대 간절히 기다리던 3월의 봄이 훌쩍 다가왔는데도 내 인생에는 전혀 봄날이 올 기미가 없다. 칼날 같은 바람에도 이미 매화는 활짝 피고 목련은 꿈틀거리고 새 순은 간질간질 돋았는데, 춥기만 한 내 인생에는 분홍 노랑은 커녕 옅은 연두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내 인생의 계절은 머나먼 회색이다. 계절이 흔들리고 움직일 때까지 꽤나 기다려야 한다.

인생에 봄날을 맞이하는 타이밍은 각각 다르지만, 봄날을 준비하는 방법은 모두에게 다르지만, '기다린다'는 옵션은 내게 퍽이나 어렵다. 봄날을 기다리기에 너무나 지쳤다. 인내심이 부족한 나는 이제 안 되겠다. 일단 여기 추운 데를 떠나야겠다. 이제는 기다리다 지친 내가 봄의 나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하니 봄의 나라에 기별을 보내자. 내가 기다리다 지쳐서 그곳으로 가고 있다고. 이제 곧 나를 맞을 준비를 하라고.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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