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3.08 10:00

디저트에 가장 어울리는 과일은 무엇일까. 특히 눈처럼 희고 포근한 생크림과 어울리는 과일은? 두말할 것 없이 새빨간 딸기 아닌가. 생크림처럼 흰 눈이 가득한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는 붉은 딸기가 자라고 있다. 이제 때가 되었다. 딸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봄을 맞기 직전마다 딸기 디저트가 난리다. 몇몇 베이커리와 카페에서는 포스터를 붙여 딸기 디저트 시리즈를 광고한다. 메리어트 호텔, 반얀트리, 인터컨티넨탈 등 이름있는 호텔은 시즌을 놓칠세라 열심히 딸기뷔페를 선전한다. 성인 한 명당 6만 원이 훌쩍 넘는 쉐라톤 워커힐 딸기 뷔페에서부터 비교적 저렴한 애슐리 퀸즈 딸기 뷔페까지 요즘 SNS와 포털사이트에는 딸기 뷔페 사진이 붉은 꽃처럼 가득하다. 네이버에서는 자사 뷔페 예약을 통해 추가 혜택을 준다며 광고하고, 카카오에서는 특정 매장의 뷔페 3+1 쿠폰이 있다며 유혹한다.

'카-페-인(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딸기들을 보면 생각나는 그림이 있다. 샤르댕이나 르누아르, 류시앙 프로이트 등 정갈한 딸기 정물화를 그린 화가는 수도 없지만 뷔페에서처럼 먹음직스러운 붉은 긴장감 표현은 역시 샤갈의 그림이 제일이다. 여기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그림, ‘딸기. 식탁에 앉은 벨라와 이다(Strawberries. Bella and Ida at the Table)’를 소개한다.

Marc Chagall <Strawberries. Bella and Ida at the Table> 1916

샤갈의 그림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특징적인 헤어스타일을 한 여자다. 곱슬거리는 검은 단발을 한 우아한 여자를 발견하면 '그녀구나!'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굳이 그림의 제목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 여성이 화가의 아내인 '벨라'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벨라는 붉은 옷을 입고 붉은 꽃무늬 스카프를 벗어놓은 채 붉은 딸기에 눈독들이고 있다. 식탁에 놓은 커다란 접시에 배불리 먹기에 충분한 딸기가 수북이 쌓여 있다. 아주 작은 딸 '이다'는 아기의자에 안전하게 고정되어 있다.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댄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라. 이제 본격적으로 딸기를 '마실' 준비가 되었다. 샤갈만 곁에 앉으면 된다. 곧 붉고 달콤한 향락의 시간이다.

샤갈이 이 그림을 그린 1916년은 벨라 로젠펠드(Bella Rosenfeld)와의 결혼 직후 딸 이다(Ida)를 낳아 행복의 절정기에 올랐을 시기이다. 1910년 예술가로서의 포부만 가졌던 스물두 살의 화가 샤갈은 러시아 비테프스크(Vitebsk)에서 나이차와 신분 차가 큰 벨라를 만나게 되고, 곧이어 벨라에게 어울리는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벨라는 샤갈을 끈질기게 기다려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샤갈은 화가로서 성공하고 1914년 고향으로 금의환향한다. 샤갈은 다음 해 벨라와 결혼하고 예술의 도시 파리로 가려고 하지만 전쟁 때문에 그들은 당분간 러시아에 머물러야 했다.

당시 러시아의 화가들은 새로운 작품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형식과 색채와의 관계에 집중해 '절대주의'라 불렸던 러시아 추상화의 대가 말레비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샤갈은 여전히 자신의 감정에만 관심을 가졌다. 사랑의 기쁨을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하는 것에만 열중했다. 샤갈은 '자신만의 초현실주의'를 만들고 가꾸어갔다. 행복의 세계를 그리고 또 확장해 나갔다. 수북한 딸기를 눈앞에 둔 순간처럼 달콤하고 만족스러운 세계 말이다.

SNS에 딸기 사진을 포스팅한 누군가가 '행복의 맛'이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도 아닌데 딸기 향과 딸기 맛이 코끝과 혀끝으로 올라온다. 딸기 뷔페 사진에 붉은 입맛이 돈다. '나도 가고 싶다'는 욕망이 절실하다. 자연스레 '함께 딸기 뷔페를 가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 기껏해야 한두 명, 그들은 내게 누구인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다. 함께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특별한 디저트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다.

재작년 ‘행복을 위한 작은 사치’라는 다큐멘터터리에서 대표적인 일상의 '작은 사치'로 1~2만 원가량의 고급 디저트를 가장 먼저 꼽았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하물며 고가의 딸기 뷔페라면 커다란 사치임에 분명하다. 그러한 사치를 함께 누리고 싶은 사람, 함께 딸기 뷔페를 가고픈 사람이라면 특별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나도 올해는 한 번쯤 그런 사치를 누려볼까 한다. 붉은 딸기와 함께 떠오른 특별한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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