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재아기자
  • 입력 2017.03.15 18:18
<사진제공=구글>

[뉴스웍스=이재아기자] 고병원성 조류독감(AI)으로 계란값 파동을 겪은 지 3개월여 만에 이번에는 치킨값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국내 치킨업계 1위인 BBQ치킨이 가격을 올리려다 정부의 압력으로 전격 철회하자 정부 개입 방식의 적정성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것.

그간 치킨업체들은 최소 3년에서 8년째 치킨가격이 동결된 동안 임대료, 인건비, 배송비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서 전반적인 원가가 상승해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공통되게 주장했다. 필두에 나선 것은 BBQ였다. BBQ는 8년간 가격 인상을 하지 않았으나 당초 오는 20일부터 모든 메뉴 가격을 9~10% 인상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BBQ가 치킨값 인상 방침 발표한 이후 정부의 공개 압박이 이어지고 소비자들의 부정적 여론이 들끓자 BBQ는 결국 15일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정부에서 가격 인상과 관련한 요청이 들어올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가격 인상 계획을 사실상 철회했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소비자는 항상 피해자"

농식품부는 AI 파동을 틈타 이뤄진 치킨값 인상이 부당이득 행위, 혹은 폭리라고 보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가 AI와 무관하게 정해진 가격으로 닭고기를 공급받고 있는데 하필 이 시점에 판매 가격을 올리겠다는 게 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폭리, 부당이득, 가격담합행위 등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소비자단체, 생산자단체,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함께 공동 대응할 것"이라며 "유통질서를 문란하게 한 업체는 국세청 세무조사, 공정위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를 의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강력 대응에 소비자들은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정부가 오랜만에 속 시원하게 일처리를 했다”면서 “서민 물가가 죄다 상승한다고 해도 설마 치킨 가격까지 오를 것이라곤 생각도 안했다. 치킨업계가 괘씸하고 배신감이 컸는데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니 다행이다”고 안도했다.

다른 네티즌은 “상식적으로 하필 이 시기에 치킨 가격이 갑자기 오를 이유가 없다고 들었다”면서 “생활 물가가 오른다고 할 때 마다 답답하지만 소비자들이 나서서 해결할 방법이 없었는데 정부가 나서주지 않았으면 우린 이번에도 피해자로 남았을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정부의 상품 가격 조정은 행정권 남용"

치킨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몇 년 동안 치킨 가격이 제 자리였는데 인건비나 임대료는 올랐고 배달앱 수수료 등 새로운 지출이 생겼기 때문에 가맹점주들이 먼저 치킨값 인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가격 인상을 결정하는데 시장 가격 변동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I로 닭값이 올라서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각종 부대비용이 올라서 가맹점들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이어 "요즘 세상에 기업이 제품 가격을 올린다고 세무조사를 나온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호소했다.

업계와 같은 입장을 보이며 정부의 규제가 과도하다고 지적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한 네티즌은 “치킨이 여느 외식메뉴보다 가격이슈에 민감하기는 하지만 탈세나 담합의 불공정거래를 한 것도 아닌데 정부가 무리하게 업계 팔을 비트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특히 BBQ가 업계 1위이긴 하지만 시장독점적 사업자도 아니고 공기업도 아닌데 상품의 가격을 조정하는 것까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행정권 남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BBQ가 시장독점적 사업자나 공기업도 아닌데 정부가 세무조사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민간기업의 가격 결정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과도한 간섭"이라며 "시장경제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국세청 "가격 인상 잡자고 세무조사 못 해"

치킨값 논란이 정부부처와 업계 간 힘겨루기로 번지자 세무조사 업무를 담당하는 국세청도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세무조사대상 선정 사유가 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국세청이 마음대로 조사에 나설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농식품부에서 세무조사 의뢰가 들어온 적도 없고, 들어온다 하더라도 탈루 혐의가 있어야 착수하는 것"이라며 "세무조사는 납세자의 법적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높은데 가격 인상을 잡기 위해 세무조사를 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부처 간 손발도 맞추지 않은 상태에서 농식품부가 섣불리 '지르고 보자' 식의 대응을 취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잘 해보자는 취지로 대응하는 것은 알겠지만 세무조사가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세무조사로 기업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는데 잘못된 사실이 알려져 업계에 혼란이 올까봐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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