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어른(코지마 토라지로)
[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어른(코지마 토라지로)
  • 김수정
  • 승인 2017.03.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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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진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여기저기 학교와 학과를 알아보고 있다. 알아보는 곳마다 천양지차다. 어떤 학교에서는 인정해주는 선수 과목이 다른 학교에서는 미인정 과목이기도 하고, 어떤 학교에서는 4학기만에 조기 졸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다른 학교에서는 6학기를 꽉 채워야 졸업할 수 있도록 한다. 올해 9월부터 공부할 수 있도록 후기 입학이 가능한 학교가 있는가 하면 내년 상반기 공부부터 시작하도록 교육과정이 짜인 학교가 있다.

가능한 한 빨리 입학하고 졸업해야 하는 내 마음은 조급해지지만 내 속도와 세상의 속도는 전혀 다르다. 내 인생의 속도와 전혀 따로 노는 세상의 속도를 생각하면 초조해진다. 이럴 때면 시간의 속성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된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무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이고 줄여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일을 모두 해 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의 물결을 자유롭게 타고난 사람들이다. 물론 운도 그를 도와주어야겠지만, 비슷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크게 차이나는 성과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섭섭하다.

코지마 토라지로(児島虎次郎)의 그림 한 장은 그런 내 비뚤어진 섭섭함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 메이지 시대 화가의 그림, 《등교(登校)》는 무슨 연유엔가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작은 아이의 표정이 압권이다.

児島虎次郎 《登校》 1906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 재미가 없다. 공부도 별로이다. 키도 작다. 뭐 하나 즐거울 데가 없다. 함께 걷고 있는 훌쩍 큰 소녀는 언니 같다. 아이들이 어른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어른용임이 분명한 모자와 우산, 앞치마 때문이다. 두 아이의 옷은 비슷한 차림새로 비슷한 무늬의 알록달록한 앞치마가 자매임을 확신하게 한다. 줄무늬의 간이복 위에 화려한 앞치마가 예쁘고 세련되어 보인다. 둘은 싸웠는지 서로 다른 곳을 보며 걷고 있다. 학교에 가기 싫은 두 사람의 등을 밀어주는 햇살을 증명하듯이 그림자는 두 사람의 앞을 향해 먼저 걸어가고 있다.

코지마 토라지로 (児島虎次郎, Kojima Torajiro, 1881~1929) 화백은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일본 인상파의 거장 구로다 세이키(黒田清輝)와 후지시마 다케시(島武二)에게서 사사, 일본식 인상주의를 자기 식으로 소화한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오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郎)의 후원을 받아 유학의 행운을 따낸 것이다. 1910년부터의 몇 년간 화가는 유럽에서 인상주의의 실제를 경험했다. 벨기에 인상파 화가 에밀 클라우스를 만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귀국하고 나서도 그의 관심은 오직 인상주의였고, 자국인 일본에 인상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1920년에는 프랑스 지베르니로 달려가 실제로 '살아있는 인상주의' 모네 곁에서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다.

이 그림은 메이지 39년,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천황이 통치하던 시대, 무상 의무교육(1900년)이 시작된 후의 그림이다. 메이지 5년인 1872년, 교육제도가 정비되고 소학교와 중학교가 대량으로 설립되었으며 곧이어 소학교 교육이 의무화되었다. 지역공동체에서 각자 다른 수준의 간이 지식을 익히던 아이들이 같은 지식수준의 교육과정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여성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언급되어 메이지 7년인 1875년에는 여자 사범학교가 설립되는 등 서서히 여성 의무교육의 기반이 준비되었고, 여성 역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여성도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소녀 둘도 공부를 마치면 한 단계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저렇게 좋은 앞치마와 모자, 양산 차림으로 학교에 보내는 부모이니 고등교육까지 받게 할 확률도 높다.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동생의 표정은 이 그림의 백미다. 아이는 늦게 태어난 자신에게 화가 나고 훌쩍 커서 항상 자기 위에 있는 언니가 원망스럽다.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되어 속상하다. 그래도 언니가 좀 더 성숙하다. 멀리 떨어져 걸을 수도 있지만 햇살을 피해 동생의 머리 위에 그늘이 질 수 있도록 양산을 기울여주고 있다. 별수 없이 언니라는 존재는 그렇다. 작은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 언니도 빨리 어른이 되어 동생 돌보미에서 벗어나고 싶다.

기회는 시간을 통해 온다. '타이밍'이라는 모습으로도 오지만 '성숙'의 모습으로도 온다. 시간이 흐르면 모두 생물학적 어른이 된다. 같은 학교를 다녀도 같은 공부를 하고 졸업하지 않듯이, 같은 시간을 통과해도 함께 성숙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늦게 태어나 억울한 동생은 빨리 성숙해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누구나 일 년에 한 살씩 나이를 먹지만 일 년의 속도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인생을 길게 사는 방법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빨리 성숙해지는 것이다. 생물학적 나이는 먹었는데 이루어 놓은 것 없고 마음만 급하면서 아직 어른이 되려면 먼 것 같은 내게도 다른 옵션이 없다. 시간을 당겨쓸 수 없다면 별수없다. 빨리 성숙해지는 미션만이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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