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수면(Frederick Carl Frieseke)
[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수면(Frederick Carl Frieseke)
  • 김수정
  • 승인 2017.04.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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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 중에는 4-5시간, 주말 10시간의 수면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이 비정상적인 수면시간의 원흉은 결코 짧다 할 수 없는 출퇴근 시간이다. 주 5일을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삶이 다 그러하다는 것을 함께 출퇴근하는 대중교통 동지(?)들에게서 읽기 때문에 별 불만은 없다. 게다가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 중》을 보고 나서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춘천이나 청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는데 왕복 3시간 반의 출퇴근길은 귀여운 수준이다. 다만 타고난 체력 이놈이 불량하니 아쉬울 뿐.

장거리 출퇴근족에게 잠은 절실하다. 도심과 1,2 신도시를 연결하는 지하철에서는 꾸벅꾸벅 졸다가 옆 사람의 어깨에 기대고야 마는 피곤한 사람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알람을 맞춰놓고 손에 꼭 쥔 휴대폰이 부르르 울려서 깜짝 깨어나는 사람도 왕왕 볼 수 있다. 신도시 베드타운을 연결하는 빨간 광역버스는 통로 공간이 좁기에 비자발적 관찰이 더욱 가능하다. 우리 동네를 지나는 광역버스 몇 대는 의자가 편안한 관광버스를 개조해 만든 터라, 피곤한 분들은 더 쉽게 꿀잠에 드신다. 엊그제만 해도 버스 한쪽에 큰 소리로 코를 골며 잠이 드신 분이 계셨지만 누구도 그분을 깨우지 않았다. 피곤한 그분을 이해하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부분 피곤해서 주무시고 계셨기 때문이다.

출근길 버스에서 자리를 발견하면 뛸 듯이 기쁘고, 어쩌다 짧은 쪽잠을 잘 때면 안심이 되고, 곧 내려야 할 종착지가 아쉽다. 이럴 때는 편안히 누워 잠이 든 그림마저도 부럽다. 달콤한 쪽잠에 빠진 편안한 그림을 한 장 소개한다. 미국 인상주의 작가 프레데릭 칼 프리스크의 <마담 겔리의 초상>이다.

Frederick Carl Frieseke 1907


프레데릭 칼 프리스크 (Frederick Carl Frieseke, 1874~1939)는 1906년부터 1919년까지 지베르니에 정원이 아름다운 저택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거주한다. 지베르니에는 인상주의의 거장 모네가 있었다. 본인은 자신이 존경한 것은 르누아르뿐이라며 모네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했지만, 그렇다기에 모네는 너무 대단한 인상주의자였다. 화가의 주장과 상관없이 프리스크는 모네를 추종해서 지베르니로 찾아간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에 포함되어 분류된다. 이 작품 역시 화가가 프랑스 지베르니 생활 가운데 그린 그림이다.

프리스크는 미국 인상주의 작가 중에서도 '장식적 인상주의자'로서, 1901년경부터 본격적으로 꽃과 여성 조합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림마다 눈부신 빛과 색채로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가정과 정원에서 포즈를 취하는 여성은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풍만하고 부드러운 선을 자랑한다. 화가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과는 다르게, <마담 겔리의 초상>은 빛 가운데 아름다운 포즈를 취한 여성이 아니라, 실내에서 무의식 상태로 잠들어버린 여성의 모습을 다룬다.

보기만 해도 푹신해 보이는 소파 위에 귀부인 하나가 비스듬히 누워 잠들어 있다. 홍조 도는 볼과 분홍빛 입술이 분홍빛 옷과 더불어 생기를 뿜어낸다. 줄무늬 벽지와 줄무늬 쿠션, 소파 커버가 자칫 희미해 보일 수 있는 화면에 힘을 실어준다. 부인은 원래 앉아 있다가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운 듯 치렁치렁한 치마가 아래로 쏟아져 있다. 잔뜩 구겨져 있는 쿠션이나 발 쪽으로 밀려올라 간 줄무늬 소파 커버가 그 상상을 뒷받침한다. 왼쪽 손 아래로 흘러내린 하얀 손수건은 어떤 용도였을까. 근심을 닦는 것이었다기에는 너무 구겨져 있고, 물건을 닦는 것이었다기에는 너무 깨끗하다. 구부러진 다리와 미처 펴지 못한 무릎이 그야말로 의도하지 않은 쪽잠이다.

요즘 나는 쪽잠도 잘 자지 못한다. 바짝 긴장해야 하는 업무가 연속되어서인지, 예전처럼 십여 분 꾸벅꾸벅 조는 일도 줄었다. 예민한 성격 탓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도 나날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아침마다 들르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의 얼굴이 낯익어가고, 등교하며 만나는 학생들의 가방은 나날이 무거워져간다. 지하철 옆 상가를 청소하시는 분은 노숙하시는 분을 아침마다 깨워 일으키신다.

나는 세상 근심을 잊고 잠든 프리스크의 그림을 보면서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시편 127편 2절에는 "신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이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문장은 문맥 그대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 "신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가 잠을 잘 때도 지켜주시느니라"가 그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잘 수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안전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다. 긴장에 쫓기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수면이 간절한 이유는 수면 이후에 확실한 회복이 있기 때문이다. 좀 놀아본 사람만이 무대 위에서 놀 수 있듯이, 쉬려고 해도 좀 쉬어본 사람이 푹 쉴 수 있다. 생리활동의 일부인 수면도 계획이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잠이 '신의 선물'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푹 자지 못해 늘 피곤한 모든 이에게 보호하심의 평화와 쪽잠의 혜택이 있기를 소망한다. 물론 만성 수면 부족 상태인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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