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명수기자
  • 입력 2017.03.07 09:00

[뉴스웍스=박명수기자] 대선주자들이 경쟁하듯 재벌개혁 정책을 내놓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 중 하나가 재벌인데다, 순환출자를 통해 5% 내외에 불과한 지분으로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자식들에게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장악 등으로 자본시장을 농락하고 있는 재벌들의 패악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까닭이다.

사실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노는 분노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선입견에 휘둘려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실패한다면, 재벌개혁이 자칫 재앙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 특히 재벌개혁이 민생위기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안한 것 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재벌개혁의 핵심은 지배구조 개혁과 투명한 경영구조다. 이사회와 감사위원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소액주주와 노동자가 경영에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문제는 지금 같은 불황에 이사회가 투명해진다고 해서 이사들이 기업에게 고용을 늘리거나, 수익률 하락을 감당하고서라도 중소기업 납품가격을 올리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 같다는데 있다. 이런 결정은 장기적으로 이득이 있을 수도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손해다. 불황기에 장기 전망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단기 손해를 감수하고 성과가 불확실한 장기 이득을 위해 경영전략을 짠다는 건 기업 입장에서 보면 배임행위일 수도 있다.

주주나 종사자가 경영에 참여해도 마찬가지다. 불황에 고용을 늘리면, 기존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 압력이 증가하고, 공정한 거래를 늘리면 주주의 배당이 감소한다. 호황기에는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지만 불황기에는 이해관계자 범위를 좁혀야 이익이 보장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불황기에 투명한 경영은 민생에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며 “기업이 더 투명해질수록 오히려 민생과 더 멀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내놓은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도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하청 쥐어짜기를 규제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시장의 실제 현실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1·2차 벤더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자. 이들은 대기업에 약탈당하는 희생자라기보다는 대기업의 성과를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하위 파트너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하다. 실제 1·2차 벤더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임금이 대기업과 관계없이 완성재를 만들어 곧바로 소비자들에게 파는 독자적 중소업체들 보다 높다. 만약 ‘대기업의 착취로 협력업체의 임금이 낮다’는 얘기가 옳다면 대기업 협력 중소업체의 임금 수준은 독자적 중소업체의 그것보다 낮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대형마트가 중소업체에 하는 각종 ‘갑질’도 문제지만, 이를 모두 대기업 때문이라는 주장도 어폐가 있다. 대형마트가 없다면 판로가 끊기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감안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소송을 할 수 있으면 뭐하나. “싫으면 말고” 하면 소송이고 뭐고 간에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재벌의 단점과 장점 파악하고 개혁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지원 연구실장은 “재벌을 규제한답시고 그나마 사회적 선순환을 창출한 부분까지 두들기면 서민·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는 힘들다”며 “재벌의 단점은 물론 장점까지도 총체적으로 점검해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개혁 대안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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