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7.03.09 09:10
서울 여의도의 일출.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DB>

[뉴스웍스=한동수기자] ‘장미대선’이 확실시 되면서 재벌개혁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각 대선 캠프마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많은 재벌개혁 공약을 쏟아내고, 앞으로도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들이 내놓는 수많은 정책들이 민생위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인가는 곱씹어봐야 한다. 실질적인 정책이라기보다는 개혁 후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장식품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이런 정책들이 대충 기회를 보다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앞선 선거에서도 대선주자들이 수많은 정책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제도로 정착한 경우는 많지 않고, 그것이 제대로 재벌 개혁을 이끌어 내지도 못했다”며 “기업과 서민들이 직접 삶의 현장에서 만드는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재벌개혁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최근까지 들어난 일련의 사태를 보면 재벌의 사회적 폐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재벌들이 지니고 있는 장점마저 무시하면 개혁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벌을 규제한답시고 그나마 사회적 선순환을 창출한 부분까지 두들기며 변죽만 울릴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우선 한국의 대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면서 돈놀이나 하는 유럽·미국 기업들만큼 ‘자본의 사회적 역할’에 무심한지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사회적 역할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단연 ‘투자’다. 재벌 가족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배력을 계열사의 확장을 통해 실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단기적인 관점이 아니라 나름의 장기적·전략적 시야 속에서 투자를 통해 기업을 키우려 한다. 한국 재벌 집단의 독특한 측면이다.

오너 경영의 폐해도 오해의 여지가 있다. 오너 체제냐, 전문경영인 체제가 옳으냐에 대한 답은 본디 정답이 없다. 오너 경영에서 전횡의 문제가 있다면, 전문경영인 체제에선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의 성공은 오너의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주효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기업들의 출연을 재벌의 정경유착으로 연결하는 주장도 보기에 따라 무리가 있다. 기업이 이번 사태의 피해자라는 시각도 많다. 이 사건의 발단이 정치권력이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 자유를 침해한 데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서다. 따라서 이 문제 대해서는 정치권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일부 기업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불공정한 거래 관행, 제왕적 경영, 불법·편법을 통한 경영세습 등은 당연히 고쳐야 하고, 철폐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처방과 수술은 기업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처방이 나온다. 만약 제대로 하지 못한 기업이라면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만들면 된다. 이런 일들이야말로 정치가 할 일이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국부를 창출하는 주체라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된다. 기업은 무작정 때려잡고, 해체하고, 규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포플리즘에 입각한 재벌 때리기는 일부 국민들의 심리적 만족감을 높이고 표를 얻을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대책은 아니다”며 “기업들이 마음껏 뛰게 규제를 풀고, 경쟁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걷어내면 개혁은 시장에서 스스로 일어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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