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7.03.07 13:22

노인이 되면 불편한 것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노인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집안에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문을 한 번쯤 해봄직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 모친은 자주 넘어지신다. 다리근력은 물론 균형감각마저 떨어져서다. 골다공증까지 진행하다보니 손목·허리·고관절이 부러져 수 없이 병원신세를 졌다. 이런 일을 몇 번 당하고 나서 낙상을 예방하는 기술이 없는지 찾아봤다. 예컨대 ‘균형을 잡아주는 신발’이나 ‘특수 지팡이’, 또 ‘넘어졌을 때 충격을 줄여주는 보호대나 옷’은 없을까 하면서.

노인은 또 나이가 들면 악력이 크게 떨어진다. 그러다보니 목이 말라도 혼자 음료수 뚜껑을 열 수 없다. 모든 식품용기를 살펴봤다. 어떤 것도 노인을 배려한 포장은 단 하나도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화가 났다. 도대체 과학자들은 무얼 연구하는 거야. 이렇게 큰 시장이 있는데…

정부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닐 게다. 오히려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인구 고령화에 쓸 만한 기술을 개발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2006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한 정부는 현재 제3차 계획을 시행 중이다. 고령친화 육성사업을 살펴보면 모바일 원격의료 기술이나, 재활치료기술, 신체기능복원기술, 건강관리 서비스 기술 등이 들어있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고령자의 실생활과는 괴리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정부의 기술개발 정책이 수요자의 필요 중심이 아닌 기술주도형 관점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기술주도형은 상품을 개발한 뒤 이를 시장에 내다 파는 형태라 노인들의 필요성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시장과는 거리가 먼 기술 개발이 과연 노인의 삶을 얼마나 개선시켜줄지 의문이 간다.

노인의 생활 개선을 위한 기술은 막대한 R&D가 들어가는 첨단과학이 아니다. 이미 대중화한 기술을 잘 응용하고, 융복합하면 가능한 것들이다. 연구비가 크게 들지 않으면서 시장규모는 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어르신을 안 모시는 정책입안자나 연구자가 있겠는가. 부모님 집에 며칠이라도 거주하며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불편하신지 보고, 느끼고, 물어보라. 과학기술을 이용하면 노인도 결코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10~20년 뒤 내가 편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이나 서구는 다르다. 이미 많은 기술이 제품화해서 스마트한 디자인으로 노인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2015년 전 세계 노인보건용품 시장규모는 약 74억 달러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노인의 기능적인 문제를 보조해주는 직접적인 건강제품 관련 수치다. 노인의 패션이나 놀이·문화 등 간접적 소비는 제외한 것이다.

이미 노인용 기저귀 판매량은 어린이용을 넘어섰다. 미국의 하기스는 노인 기저귀에 기술개발과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다. 이른바 ‘패션 요실금 기저귀’다.

처음 노인용 기저귀가 출시됐을 때는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 노인을 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아기 취급한 제품 이미지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이 같은 판매부진을 개선하기 위해 기저귀를 바라보는 노인의 시선을 바꾸는데 주력했다. 중년의 인기연예인을 등장시킨 광고와 함께 패션 속옷과 같은 개념을 심어줬다. 색상, 착용감, 소재, 그리고 슬림한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 선택의 폭도 높였다.

전문조사기관에 따르면 노인용 기저귀 시장은 2015년 18억 달러에서 2020년 27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노인은 돈이 없다’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기술 또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널려 있는 기술을 재활용 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기술개발과 마케팅이 절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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