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4.24 10:12

친구 M이 일요일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 가정주부로 사는 친구들과는 통화가 어렵다. 그들이 남편을 보내고 숨 좀 돌릴 시간에는 내가 일하느라 바쁘고, 내가 퇴근하고 나서는 그들이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뭐 하고 있어?"라는 질문과 함께 잠시의 안부를 물었다. 내일 할 일로 PPT를 고치고 있고, 마음처럼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어 메일을 쓰고 있다는 나에게 M은 한숨 쉬며 말했다.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마, 애쓰면서 살다 보니 욕망은 더 커지고, 그걸 못 채우니 사는 게 더 힘들어지더라."

나는 피식 웃으며 "그렇다고 너는 안 그러니?"라고 되물었다. 가정주부가 편해 보인다는 사람은 가사를 안 해본 사람이다. 나 같은 덜렁이는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 노동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티 안 나게 사람 기력을 빼먹는 것이 가사노동이다. 일상이란 대개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밥통에 따뜻한 밥과 냉장고에 가득한 반찬, 서랍에 가득한 깨끗한 타월은 부족할 때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걸 잘 해보려고 매일 기를 쓰는 M의 삶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M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마." 책상에 앉았다.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마." 다시 그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거린다. 주어진 일을 조금 더 잘 해보려고 기를 쓰는 에밀 클라우스의 그림 한 장이 떠올랐다.

Emile Claus 'The Haymaker' 1896

벨기에의 화가 에밀 클라우스(Emile Claus, 1849~1925) 역시 붓끝에 빛을 가득 품은 인상파의 화가이다. 클라우스의 농촌 그림을 보면 선구적 사실주의자였던 밀레의 시선이 보이기도 하고, 다채로운 피사로의 색채가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클라우스의 스타일은 "루미니즘(Luminism, 광휘주의)"이라 하여, 인상주의의 흐름 안에 있던 미술 세계에 색다른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이 <건초 만드는 사람>은 '태양의 화가'로 불리는 에밀 클라우스의 루미니즘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화가가 능숙하게 사용하던 갈색과 연두 색채를 이용해 노출 과다 같은 빛을 화면에 가두었다. 특히 이 연둣빛은 풍부한 노랑과 풍부한 초록, 약간의 붉은빛이 혼합되어 충만한 색채감을 발휘한다.

클라우스의 이 그림은 '빨리빨리' 조금 더 많은 일을 해내려는 우리의 일상에 거울처럼 비친다. 가까스로 스물은 되어 보이는 여성의 얼굴에는 아직 앳된 빛이 스며 있다. 꽉 묶었을 것이 분명하나 어느새 흐트러진 잔머리는 그간의 노동이 만만치 않았음을 나타낸다. 자기 키보다 훨씬 큰 건초더미를 옮기느라 여자는 버겁다. 게다가 양도 만만치 않다. 보아하니 건초도 한두 묶음이 아니다. 몸통보다 더 크다. 여자의 등에 간신히 얹힐 만큼이다. 이걸 버티고 옮기려니 등과 허리는 뒤틀려 구부러진다. 치렁치렁한 앞치마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왼손으로는 흘러내리는 치마 끝을 부여잡아야 한다. 건초나 앞치마나 언제 쏟아져내려도 이상하지 않다. "한 번에 하나씩만 하란 말이야"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하지만 안다. 매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하나씩은커녕 한 번에 두세 개의 일을 처리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바로 우리들 아니던가. 그나마 뜨거운 햇살이 역광이니 다행이다. 순광이라면 뜨겁거나 눈이 부셔서, 한편으론 기미 걱정에 좀 더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사전을 뒤져보니 'Haymaker'는 이외에도 '녹아웃 펀치', '비장의 한 수', '훌륭한 작품'이라는 사전적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괜히 부아가 치민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결국 훌륭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애쓰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나는 꾸역꾸역 하던 일을 마무리짓고 내일을 준비한다. 아마 M도 그러할 것이다. 가족을 섬기려 잘 보이지도 않는 일상에 애를 쓸 것이다. 정작 전화했던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데도, 부재중 전화를 한 친구에게 미안해서 또다시 밤늦게 전화를 걸 것이다.

직장 일 너무 열심히 안 해도 되고, 사람 일 너무 정성스럽지 않아도 된다. 월급 받는 만큼만 하면 되는 거고, 나에게 닿는 마음만큼만 하면 되는 거다. 사실 더 열심히 한다고 티도 크게 더 안 난다. 크게 빨라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걸 잘 못 해서 버거워서 서운해서 끙끙 앓는다. <건초만들기>의 그녀에게나 나에게나 아직도 머나먼 길이다. 균형의 고수가 되는 건 언제쯤이나 가능한 것인가. 인생은 이다지도 머나먼데, 남은 날을 하루라도 더 잘 살아야 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아 초조해진다. 벌써 "빨리빨리" 모드로 되돌아간 내게 다시 쟁쟁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마."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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