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7.04.09 09:40
허리에 착용하는 에어백 벨트.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제품으로 내장된 센서가 낙상을 감지하면 에어백이 터진다. (뉴스위크 참조)

노년층에게 낙상은 암보다 더 무서운 위협요인이다. 골절로 인해 입원이 불가피해지고, 고령으로 재활이 쉽지 않다보니 갖가지 합병증으로 생명을 잃기까지 한다.

미국에선 13초에 1명이 낙상으로 응급실 신세를 지고, 20분에 1명은 낙상에 의한 외상으로 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가 지불하는 돈은 750억 달러에 이른다. 고령화시대로 이행하고 있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질병 부담 순위에 낙상이 7위에 오를 정도로 국가의료비를 잠식하는 ‘물먹는 하마’가 됐다.

그럼에도 낙상 예방을 위한 과학기술계의 노력은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아직 초보단계다. 대부분의 정책적인 지원도 낙상 후 응급조치 기술분야에 머무르고 있다.

낙상 예방기술은 동작을 감지하는 센서와 빅데이터가 만나면서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일본의 프론테오사는 인공지능 기술인 KIBIT를 이용해 낙상예측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병원의 의무기록이라는 빅데이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간호사가 기록한 환자 차트를 분석해 낙상할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이다.

낙상의 원인은 고령자의 주의력과 시력의 저하, 근력이나 균형능력과 관련이 깊다. 따라서 간호사가 작성한 환자에 대한 기록을 분석해 낙상 가능성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개념은 간단하다. 환자를 직접 다뤄본 경력 많은 간호사라면 조금만 눈 여겨봐도 노인의 낙상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이른바 암묵지(暗默知:경험과 학습에 의해 몸에 쌓인 지식)다. 간호기록에는 이러한 내용의 암묵지가 쌓이고, 방대한 암묵지의 분석, 알고리즘을 만들어 낙상의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다.

정확도는 공동연구기관인 일본의 NTT Medical Center가 입증했다. 실제 낙상을 당한 적이 있는 344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국제표준평가도구인 Morse Fall Scale을 적용한 결과, 57%(195명)정도의 낙상 가능성을 예측했는데, 이 시스템을 이용한 결과 88%(295명)를 예측해 내 월등히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미국 미주리대 연구진의 최근 보고 역시 비슷한 개념이다. 이 연구팀은 동작인식 센서를 집안에 설치하고 노인(85세 이상 23명)의 걸음걸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걷는 속도가 초당 5.1㎝ 줄어들면 3주 내 낙상을 당할 위험이 86%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걷는 속도에 변화가 없는 사람보다 낙상 가능성이 4배나 높은 수치다 (조선일보 2월23일자 기사 참조)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인 Kinesis Health Technologies는 QTUG™이라는 제품을 개발했다. QTUG(Timed Up and Go)는 다리에 센서를 부착하고 걷는 동작을 분석해 낙상을 예측하는 제품이다. 노인은 양쪽 다리(정강이 부위)에 센서를 장착하고, 3m거리를 걸어서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 동작을 한다. 그러면 센서는 걷고 앉는 동작을 분석해 위험도를 측정·평가한다. 위험도 평가 결과는 휴대폰에 다운받은 앱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림 참조) 위험 가능성이 높은 노인에게 의료진이 교육 등 예방에 개입하면 낙상 발생률을 30~40%까지 줄일 수 있다.

 이스라엘 회사인 B-Shoe는 낙상을 줄여주는 신발을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 노인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상황을 판단해 신발이 자동적으로 발을 이동시켜준다는 원리다. 신발의 바닥은 족압 측정 센서와 동작 이동장치, 마이크로 프로세서, 스마트 알고리즘, 충전용 배터리로 구성돼 있다. 젊은 사람은 몸이 균형을 잃으면 재빠르게 발을 뒤로 이동해 자빠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이 제품은 노인의 느린 반응을 대신해 신발이 알아서 순간적으로 발을 옮겨줌으로써 넘어지지 않도록 보완해준다.

무엇보다 이 제품의 장점은 신발 모양이 티가 나지 않다는 점이다. 노인들이 지팡이나 특수 보조기에 의존하지 않고 평범한 신발을 신은 것처럼 보여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한다.

국내에서도 센서를 이용해 보행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통해 낙상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분당서울대병원은 SAP코리아, 스포메덱스와 함께 낙상 예방 시범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낙상 고위험군 환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활용해 예방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빅데이터 플랫폼 운영에 필요한 인력 지원과 기술 문제 등에 대한 업무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답보상태다.

지난해 열린 국민안전기술 포럼에선 낙상시 골절을 예방하는 ‘낙상 대비 충격 완화장치’가 소개됐다. 뼈가 약한 노인이 넘어질 때 에어백이 터져 골절을 예방한다는 것이 연구 목적. 벨트에 달린 센서가 동작 속도를 감지해 땅에 닿기 0.3초 전에 에어백이 터진다는 원리다. 생산기술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특허출원 중이고,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의 시험인증이 끝나지 않아 외부에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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