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꿈과 직업(Theodor Severin Kittelsen)
[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꿈과 직업(Theodor Severin Kittelsen)
  • 김수정
  • 승인 2017.05.02 09: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니, 저 취직 때문에 고민이에요."

이 진부한 문장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예체능 인생 동안 가장 많이 들어온 고민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라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악기 연주하는 이십 대 친구들이 여전히 내게는 가깝다. "언니"라는 호칭과 함께 걸려오는 전화에는 대부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자신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데,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오니 꿈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일을 하자니 취업의 길이 너무 좁아 미래가 불안하다고 하소연하고, 꿈에 가까운 일은 대가가 적고 쉴 시간이 적다고 속상해한다. 비교적 숨통이 트이고 안정적인 직장은 꿈에서 너무 먼 일뿐이라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이 괴롭고, 바로 그 분야에서 특출나지 못한 재능이 원망스럽다고 한다.

아무리 조금 더 살았다고 하지만 이런 문제에는 감히 조언하면 안 된다. 꿈의 문제는 남녀관계만큼 답 없는 것이어서, 어떤 결론을 내리든 본인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어떤 결론을 내려도 아쉬울 것이고 어떤 결론을 내려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꿈만큼 '노(NO)답'인 것도 없다.

꿈은 놀랍도록 아름답지만 애매하고 교활하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고 영원히 헤매도록 한다. 애절하니 손에 잡히지도 않으면서 영영 떠나지도 않는다. 이 아름다운 헤맴은 테오도르 키텔센의 그림 한 점 같다.

Theodor Severin Kittelsen <Fairy dream> 1909

노르웨이의 자랑, 테오도르 키텔센(Theodor Severin Kittelsen, 1857~1914)은 동화 및 성경 일러스트레이션, '트롤'이라는 북구의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그림, 자연친화적인 풍경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다. 선명하다기보다 경계가 분명치 않은 형태감은 뽀얀 색감과 함께 신비감을 자랑하는데, 이 신비감은 보는 이의 미래까지 영원히 빨아들일 것 같은 매력을 선사한다. 바로 그 매력 때문에 이 아름다운 그림, <요정 꿈(Fairy dream, 1909)>은 꿈을 좇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다.

한 남자가 반투명한 요정에게 홀려 멍하니 어딘가로 가고 있다. 요정은 손끝에서 빛 가루를 그물처럼 뿌리며 남자를 휘감고 있다. 남자는 이미 빛에 휘감겨 시야를 잃었고, 그물 같은 빛은 거미줄 치듯이 남자를 덮치고, 양 다리까지 휘감아 남자의 걸음을 부자유하게 한다. 남자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입을 반쯤 벌린 채 요정만을 바라보고 있다. 쪼글쪼글 구겨진 양복과 반쯤 접힌 상의 주머니는 그가 오래 정신줄을 놓은 채 헤매왔음을 알려 준다. 아무리 오랜 시간 헤매더라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금빛 머리를 휘날리는 요정은 더없이 신비롭고 비현실적이다. 손에 붙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위험하다. 붙잡을 수는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 위험함을 실감하고 있어서, 꿈에 대한 고민에는 더욱 답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꿈을 놓거나 놓지 못한다. 꿈을 빨리 놓는 사람도 있고, 늦게 놓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꿈에 미련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때때로 깊은 밤이 되면 한숨과 함께 꿈에 헤매던 시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건 교활한 꿈을 놓아준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남들이 경박하다고 현실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이제 내게는 내 마음, 내 생존, 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꿈이나 이상 따위, 큰 뜻 따위 내게는 크게 필요 없다. 그래서 조금 더 살아본 나는 미안한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아끼는 동생과 후배들이, 꿈을 품고 있기에 그들을 혹사시키는 직장보다는, 꿈과는 좀 거리가 있어도 숨통이 트이고 몸이 덜 힘든 직장에 취업하기를 바란다. 그들의 간절한 소망과 다른, 그리 긍정적인 생각이 아님에도 그렇다. 젊을 때 소리 없이 망가진 건강과 황폐한 마음은 곧 꿈마저 미워하게 만든다.

나는 그들이 일상을 순간순간 극복하기보다 일상을 순간순간 살기를 바란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은 고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려움에 질려 에너지를 모두 소모한 사람, 시련에서 주저앉은 사람은 말을 잃는다. 꿈에서 돌아선 사람은 그런 말을 남기지 않는다. 꿈에 대한 대가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만약 대가를 주지 않을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다. 설령 꿈을 미룰지라도 그것이 더 좋은 것이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newsworks.co.kr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 많은 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뉴스웍스
  • 서울특별시 중구 마른내로 140 서울인쇄정보빌딩 4층
  • 대표전화 : 02-2279-8700
  • 팩스 : 02-2279-7733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진갑
  • 고충처리인 : 최승욱
  • 법인명 : 뉴스웍스
  • 뉴스통신사업자 등록번호 : 문화관광부-나00011
  • 등록일 : 2007-07-26
  • 발행일 : 2007-07-26
  • 신문사업·인터넷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아04459
  • 등록일 : 2017년 4월 17일
  • 회장 : 이종승
  • 편집·발행인 : 고진갑
  • 편집국장 : 최승욱
  • 뉴스웍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뉴스웍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work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