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호기자
  • 입력 2017.05.04 16:52

[뉴스웍스=이상호기자] ‘어린이’라는 표현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처음 사용됐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1년부터 ‘천도교 소년회’를 통해 소년운동을 시작했고 1923년 5월1일 노동절에 맞춰 첫 어린이날 기념식을 시작했다. 방정환 선생은 모든 어린이가 존중받고 즐겁게 보내라는 의미에서 어린이날을 제정했다고 전해진다. 어린이를 통해 민족의 희망을 발견하자는 뜻이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어린이를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얼마나 어린이를 생각할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얼마 전 늦은 식사를 할 겸 떡볶이집을 찾았다. 두 팀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초등학생 4명과 학부모 2명이었다. 넓지 않은 가게 안에서 두 테이블에서 나누는 대화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초등학생들은 떡볶이를 재빠르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학원에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한 명이 먼저 일어서자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일어나 책가방을 챙겨 가게를 나섰다.

아이들이 나가고 조금 한산해지자 가게 주인이 학부모 2명과 함께 자리했다. 그들은 여느 부모들이 할 법한 동네 이야기, 집안 이야기, 이웃 이야기 등을 나눴다. 그러다 아이들 학원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는 얼마고, 저기는 얼마더라’ 따위의 이야기가 오간 끝에 한 학부모가 이렇게 말했다. “한 달, 몇 십 만원에 애들 맡길 수 있으면 싼 거야”

지금 한가하게 이 말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보다 보편적인 어른들의 인식 속에 나름의 합리로 자리 잡은 생각들을 돌아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서는 7년 만에 총 사교육비가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평균 사교육비는 4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더욱이 학생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 보수적으로 이뤄진 조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교육 열풍은 아직 유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6 한국의 사회지표’에서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생은 10명 중 8명꼴인 80%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학생(63.8%)‧고등학생(52.4%)보다 높은 비율이다.

어떤 면에서는 초등학생의 학업평가가 대학생의 학업평가보다 더 가혹한 측면이 있다. 대학생들은 학교와 학과, 교수에 따라 절대평가를 도입해 순위를 매기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은 객관식과 같은 정량평가를 활용해 일렬로 줄을 세우는 방식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부산교육청은 내년부터 초등학교 시험에서 객관식 문항을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반응은 달갑지 않다.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는 성명서를 통해 “객관식 획일주의, 객관식 만능주의도 문제지만 객관식 전면 폐지가 창의성 교육, 사교육비 절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밝히며 철회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서술‧논술형 평가만 할 경우 기본적인 개념지식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며 “부담을 느낀 학생들이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되거나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외워서 서술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논쟁도 결국 사교육 증가 우려로 귀결된다.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상수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틀을 깨지 않는 이상 사교육 쳇바퀴에서 아이들을 빼낼 방법은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은 1957년 초안이 발표됐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1988년 개정‧공포한 헌장은 11개항으로 이뤄져 있다. 이중 7개 항은 ‘받아야 한다’, ‘보호되어야 한다’와 같이 어린이가 응당 받아야 할 권리로 규정된다. ‘길러야 한다’, ‘자라야 한다’와 같이 어린이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4개 항이다. 어린이의 권리와 노력이 동시에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어른들은 어린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저 수동적으로 보호받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어린이는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며 능동적 학습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어른들은 어린이를 독립적 주체로도 바라보고 있나. 어린이를 어린이로 바라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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