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푸르른 순간(Pavlos Samios)
[김수정의 우아한 한 장] 푸르른 순간(Pavlos Samios)
  • 김수정
  • 승인 2017.05.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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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만 휴식의 달이기도 하다. 5월의 첫날 노동절부터 시작하여, 타이밍도 자비로운 부처님 오신 날, 생기가 넘치는 어린이날을 거쳐 하루 걸러 하루 빨간 날의 은혜를 베푼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감사히 5월을 맞이하고 다시 더워질 여름을 달려갈 준비를 한다. 고마운 회사에서는 빨갛지 않는 날을 빨갛게 바꾸어 편안히 쉬라고 배려하기도 한다.

여기서 약간 무리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여유가 있는 이들은 과감히 비행기 티켓을 끊기도 하고, 주머니 사정이 조금 아쉬운 이들은 고속버스 티켓을 끊기도 한다. 이 시기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바닷가이다. 탁 트인 공간과 높은 하늘, 조용한 물결 소리, 하얀 백사장은 복잡한 일 가운데 쉬지 못했던 몸과 마음을 기꺼이 자유롭게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짧은 휴가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꼭 어울리는 그림이 있어 한 장 소개한다. 어둑어둑한 카페에 가득한 무게감과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풍광이 대조되어, 휴식이 간절한 이 5월에 가까이 와 닿는다.

Pavlos Samios <Seaside Cafe> 1948

파블로스 사미오스(Pavlos Samios, 1948~)의 작품, <바닷가 카페(Seaside Cafe)>는 탁 트인 바닷가에서 고된 마음을 탁 풀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그림의 백미는 그림의 전면 테이블 위에 잘 드러난다. 차 주문을 받기 전 으레 내어주었을 물 한 잔, 곧이어 나온 커피, 잔 옆으로 흐른 커피 얼룩, 테이블 옆으로 어질러진 의자 두 개가 지극히도 일상적이며, 그 곁에 놓인 빨간 구두는 피로 가득한 한 사람의 고단함을 현실적으로 드러낸다. 생활에 찌든 여자는 아무렇게나 카디건을 벗어놓고, 가방을 놓아두고 긴장을 풀기 위해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그러다 높고 뾰족한 붉은 구두를 벗어놓고 바람을 맞으러 창 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편안히, 맨발로, 조금 더 빨리 피로를 털어내기 위하여.

활짝 열린 문과 창밖으로 푸르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 푸르름은 화가가 그리스 출신인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희고 푸르른, 강력한 햇살이 반짝이는 바로 그 그리스의 해변을 보았을 테니까. 이제 한 발짝만 더 내딛는다면 저 푸르름 안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약간의 여유만 주어진다면 여자는 푸르름 안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빨간 뾰족구두를 꿰어신고 빨간 가방과 카디건을 걸친 채, 푸른 풍광의 힘을 마음껏 충전할 것이다.

사람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 그런 한 인생이 '평범해지기' 위해 많은 것을 소진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평범한 삶'은 보통의 에너지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보통의 한 인생이 '평범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디 체력뿐인가, 열정도 서서히 소진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이라도 붙들어 에너지를 채워넣는 수밖에 없다.

작년 한 다큐멘터리에서 두어 달에 한 번 여행이나 미식을 위해 식비와 교통비를 아끼며 검소한 일상을 보내는 부부를 보았다. 그들에게 예정된 여행은 일상의 팍팍함을 견뎌낼 수 있는 약속이 된다. 이렇게 과하지 않은 가격의 '작은 사치'를 하는 사람들을 포미족(FOR ME 族)이라고 부른다. 포미족의 어원을 풀 필요도 없다. 포미족이 행복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사치이든 큰 사치이든 어떠한가. 작다면 작게, 크다면 큰 사치라고 여질지 모르는 이 푸르른 순간은 보약이 된다.

너무나 보통의, 회색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푸르른 순간은 보약이 된다. 멀티비타민도 챙겨야 하고 홍삼도 먹어줘야 한다지만, 그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푸른 보약의 효능이다. 한때 유명했던 전 국회의원의 말을 빌려온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고, 밥 이상의 것을 배려하는 것이 사람"이다. 인간은 디저트도 먹고 옷도 사 입고 여행도 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은 사치는 언제나 푸르르고, 이 푸르른 순간은 누구에게나 절실하다. 여럿이 멀리 가는 여행보다는 홀로 가까운 집을 선택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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