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5.11.29 22:45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국내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카카오·KT·인터파크를 필두로 하는 세 개의 컨소시엄이 신청을 마친 가운데, 올해 하반기 예비 인가와 내년 상반기 본인가를 거치면 드디어 인터넷전문은행이 첫 선을 보인다. 2001년 V뱅크 논의, 2008년 은행법 개정 논의 등을 거친 세 번째 시도 만에 도입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혁신과 금융산업 결합의 성과를 국내에서도 구현하는 주요한 사례라는 점에서 이번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입은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핀테크의 부상 속에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정체된 국내 금융산업을 혁신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인터넷채널의 비용 경쟁력에 의존한 1세대 사업모델로는 한계

인터넷전문은행은 인터넷을 주요 영업 채널로 이용해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 은행은 오프라인 점포를 통해 대면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인터넷전문은행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과 확산을 바탕으로 은행 업무를 인터넷을 통해 비대면으로 처리하게 된다. 당연히 점포와 인력 운영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비용상의 이점이 크게 부각된다.

하지만 1세대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인터넷 채널이 주는 비용상의 이점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무점포 운영이 비용을 크게 줄여주기는 했지만, 영업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거래당 처리비용은 기존 은행들보다 크게 낮았지만,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감수해야만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번에 처음 도입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사업모델과 영업범위가 초기 인터넷전문은행들과 유사한 수준에 머무른다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유망 영역으로 여겨지는 중금리 대출 시장도 시중은행의 진출 가능성이 높아 장기적으로 고유 영업 영역으로 지켜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술 혁신의 심화와 거시 경제의 변화 속에서 부상한 핀테크를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동시에 견인할 수 있는 2세대 인터넷전문은행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뉴 노멀' 시대, 새로운 거시경제 및 디지털 혁신 환경의 시작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이어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본격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새로운 거시경제 환경을 맞았다. 저성장·저금리·금융규제 강화 등을 포괄하는 구조적 변화는 금융산업의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금융위기와 동시대에 금융위기 충격 이상으로 금융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평가되는 '핀테크'가 등장하게 된 기반이 마련되고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표면화되던 2007년 6월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모바일 기기가 유래없는 속도로 보급됐다. 이른바 '스마트혁명'이 대두되고, SNS·빅데이터·클라우드 컴퓨팅 등 새로운 ICT 트렌드가 자리 잡게 됐다.

과거 1세대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설립 당시와는 달리, 아이폰 출시 이후 전개된 최근의 디지털 혁신 환경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에도 차별적 가치창출의 여지와 가능성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중반 처음 나타난 인터넷전문은행들이 PC와 인터넷의 확산에 기반했다면, 최근 2세대는 초고속 이동통신 환경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의 급속한 보급과 대규모 데이터의 집적·처리·전송에 큰 영향을 받았다.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 구현 용이한 환경

2세대 인터넷전문은행은 고객접점·고객기반·인프라 등에 있어서 과거보다 진일보한 환경을 갖고 있다. 고객이 언제나 휴대하는 스마트폰은 은행의 지점보다 더 선호되는 서비스 채널이다. 더불어 스마트폰이 고객의 접점이 됨에 따라 보완적 역할의 지점, 즉 ATM 등의 물리적 채널에 대한 투자 필요성도 낮아지고 있다. 다양한 센서를 보유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고객의 사용자 경험을 개선할 지급결제 서비스의 구현도 용이한 환경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발전은 전산설비에 대한 초기 투자 부담을 대폭 경감시켜 준다. 또한 SNS 등으로 마련된 빅데이터 환경을 활용해 고객의 니즈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하고, 차주(돈을 빌려 쓴 사람)가 안고 있는 신용위험을 현실에 가깝게 평가할 수 있게 되는 여지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핀테크의 부상으로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1세대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존 은행들도 할 수 있는 다이렉트 뱅킹과 유사했다면, 2세대는 차별화된 지급결제 서비스, 빅데이터를 이용한 신용평가, 비대면 본인인증 등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개선이 주요 혁신 포인트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 라이선스가 없는 핀테크 기업이 성장해 은행산업에 참여하고 변화시킬 여지도 점점 커지면서 기존 은행의 선발자 이득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새로운 경쟁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레거시가 없는 2세대 인터넷전문은행이 핀테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경우 차별적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여지도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혁신의 기폭제 역할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전 세계적으로 금융산업은 급속한 변화의 압박에 직면해 있다. 위기 이후 저성장·저금리 속에 성장성과 수익성이 동시에 제약되면서 기존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다변화되는 수요를 충족해 달라는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혁신 환경의 변화로 금융서비스의 공급여건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세계 금융계는 모바일 인터넷시대를 기반으로 금융과 ICT의 융합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핀테크'라는 새로운 화두를 접하고 있다. 금융산업과 이종산업간의 연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새로운 서비스의 창출과 이를 매개로 한 차별화의 여지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유수의 은행들도 생존을 위해서 변화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은 산업융합의 시금석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보수적인 것으로 정평 난 금융과 혁신의 상징으로 부상한 ICT의 융합의 한 가운데 인터넷전문은행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ICT를 중심으로 산업간 상호 융합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로 완연히 접어들고 있다. 금융산업에서는 경제력 집중, 은행의 사금고화 등의 우려로 금산분리가 원칙으로 자리잡아 왔지만, 향후에는 금융산업도 융합 트렌드에서 예외일 수 없는 시대다.

금융산업과 비금융산업의 주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금산분리 규제도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금산분리를 고집했었던 일본이 2000년 초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하면서 비금융주력자의 지배구조 위험관리 강화 요구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통해서 변화를 꾀했듯이 우리도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성공적 도입은 금융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있어서 본격적 융합의 시발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경제의 활력을 찾는 계기 또한 이러한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혁신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규제와 제도환경도 이 같은 변화를 가로막기보다는 장려하거나, 적어도 물꼬를 터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해당사자간의 신뢰를 해치지 않는 보완책에 대한 고민도 포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혁신의 성과를 적극 수용하면서 경제활동의 자유를 가급적 폭넓게 인정하는 정책 의지와 제도의 창출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레거시란?

컴퓨터 분야에서 과거로부터 물려 내려온 기술, 방법, 컴퓨터 시스템 및 응용 프로그램을 의미하며, 새로 대체 가능한 기존의 기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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