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영길기자
  • 입력 2017.05.12 16:31

[뉴스웍스=김영길기자] 팬택이 끝내 휴대폰 사업을 접는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거대 기업과 맞서며 한때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던 팬택의 휴대폰 20여년 역사가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12일 팬택 관계자는 "모회사 쏠리드의 정준 회장이 직원들에게 스마트폰 사업을 잠정 중단하고 추가 구조조정에 들어간다고 공지했다"고 밝혔다.

팬택은 1991년 3월 박병엽 창업주가 설립했다. 무선호출기(삐삐)로 사업을 시작해 1997년 5월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이동전화 단말기를 생산했고, 8월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99년 6월 GSM(유럽이동전화표준) 단말기 생산을 시작했고, 11월에 현대큐리텔을 인수했다. 2005년 '스카이텔레텍'을 인수했지만 2007년 4월 유동성 악화로 1차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1차 워크아웃으로 잠시 흔들리는 듯 했지만 2009년 팬택앤큐리텔과 합병돼 통합법인 팬택이 공식 출범한 뒤 2010년 12월 '베가 레이서'를 150만대를 판매하며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2위를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2011년 12월 1차 워크아웃이 종료됐지만 또 다시 경영이 악화돼 2014년 3월 2차 워크아웃이 시작됐다. 8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9월 매각 공고를 냈지만 주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2015년 5월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신청했다. 당시 팬택 직원 1200여 명은 자비를 들여 일간지에 광고문을 내고 "지금 팬택은 멈춰서지만 우리의 창의와 열정은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6개월 후 2015년 기적적으로 새 주인을 찾았지만 2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스카이' '베가'를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팬택의 휴대폰 사업 철수는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벤처 신화’를 써 내려갔던 기업의 주력 사업이 없어진다는 것이 그렇다. 벤처에서 출발한 작은 기업이 열정과 창의를 앞세워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 거대 스마트폰 제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시장을 넘봤던 모습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서글퍼서다.

지난 26년간 쌓아온 지식재산권이 한순간 해외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 중국 기업들은 지난 수년간 팬택을 인수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하지만 박병엽 창업주를 비롯한 팬택 임직원들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돈이 당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기술을 헐값에 넘기는 것은 국익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팬택을 인수한 쏠리드가 자금 사정으로 팬택의 지식재산권을 대거 팔아치울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쏠리드가 스마트폰 사업을 더 안 하겠다고 마음먹고 팬택의 특허를 외국 회사들에 헐값에 내놓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팬택은 작년 말 기준으로 국내 등록특허 2032건, 해외 등록특허 1100건, 국내외 디자인 88건과 상표 444건 등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들이 한꺼번에 빠져 나간다면 국익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팬택의 휴대폰 사업 철수가 못내 아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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