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기자
  • 입력 2017.05.17 11:18

[뉴스웍스=허운연기자] 금융권이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어떻게 화답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은데다 '비정규직 제로 시대'도 주문하고 있어서다.

금융권은 우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다. 이미 대규모의 정규직 전환 작업을 마쳤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지난 2007년 은행권 최초로 3100명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데 이어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 대부분 주요 은행도 계약직 창구직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한국씨티은행도 지난 16일 비정규직 약 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IBK기업은행도 비정규직 3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의지를 밝힌 이후 민간기업의 첫 조치다.

문제는 핀테크·비대면·바이오 인증·간편 결제·인터넷은행 등이 판치는 디지털금융 시대에 인력 감축은 금융권에서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금융 시대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비용절감이다. 당장 수익을 담보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이 상시로 희망퇴직에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은행의 영업비용인 판매·관리 비용에서 인건비인 급여·퇴직급여·복리후생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한다. 인력을 줄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비용절감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대면거래가 감소하면서 은행 점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고용확대에 걸림돌이다. 국내 5대 시중 은행(신한·우리·KB국민·KEB하나·NH농협은행)의 지난 3월 현재 점포 수는 4884개다. 이는 1년 전에 비해 107개나 감소한 것이다.

은행 점포 축소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한국씨티은행은 전국 133개 지점을 32곳으로 줄이는 극단적인 경영 전략으로 노조와 대립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은행 점포 축소는 한국씨티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점포를 통폐합해온 다른 시중은행들도 디지털화가 가속화할수록 앞으로 계속 점포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권은 새 정부의 강력한 '일자리 창출 의지'가 반가울 수만은 없다. 공공성이 강한 사업인 은행 특성상 주주 이익만을 대변해 경영할 여건이 아니라 부담은 더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이 인력 효율화를 위해 비용을 줄여야 하지만, 일자리 창출이 대한민국과 새 정부의 화두로 떠오르는 만큼 사회 기여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단순히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일시적인 조치로 일자리를 창출해서는 안된다는데 있다. 적정 인원을 산출해 정부 일자리 정책에 화답하는 동시에 수익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함께 찾아야만 금융권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