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7.05.20 09:52
휠체어의 이동과 접근이 쉽게 디자인된 부엌(사진: www.miserv.net)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장애자가 되는 과정이다. 눈이 어두워지고, 관절염으로 수족이 불편해진다. 근력이 떨어져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행동하기 어렵고, 정신이 퇴행하면서 갖가지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집은 심신을 쉴 수 있는 가장 편한 장소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안전지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인에게도 그럴까.

신체의 변화에 맞춰 주거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집은 오히려 위험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실제 한 조사에서도 노인 외상의 62%가 가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노인의 정서는 대부분 집단시설 보다 ‘살던 곳에 계속 살기(Aging in place)를 원한다. 이것이 미국이나 일본 등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선진국이 노인주거 정책을 요양시설 입주에서 주거 개량 쪽으로 전환한 이유다.

지난 칼럼 ‘고령자 주택, 부동산 시장에 새 바람’에 이어 이번에는 실질적으로 노인이 안전하고 살기 편하도록 주택개량을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주택개량에도 당연히 UD(유니버설 디자인)가 적용된다. 장애자는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주택에 유니버설 디자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노인의 신체능력이 개인별로 모두 다르고, 나이가 들수록 장애가 계속 진행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미국의 ‘캐슬 코널리 메디칼(Castle Connolly Medical Ltd: 의료소비자가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찾도록 돕는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America's Top Doctors>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회장 존 J. 코널리 박사가 제시한 노인주택 개량을 위한 지침이다. 그는 미국 뉴욕의대 총장을 10년 이상 역임했고, 헬스케어 분야에서 존경받는 지도자 Top2 중 한 명이다.

그는 “어떤 유형의 집이라도 사고를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며 “주택 개조의 목표는 노인의 신체능력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코널리 박사가 제시한 노인친화형 주택개량의 초점은 ▶자립 ▶이동 ▶안전 ▶보안 ▶편리함 등 다섯 가지다.

1) 사전 평가

노인의 생활습관, 건강 상태, 여가 활용 등에 따라 주거공간을 달리 디자인할 수 있다. 예컨대 노인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 수면 장소, 손님 방문, TV시청, 독서 등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노인의 일상생활을 평가하려면 평가자가 이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며 관찰해야 한다. 평가자는 노인이 식사는 어떻게 준비하고 먹는지, 애완동물의 먹이는 어떻게 주고, 함께 즐기는지,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는 등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위생에 대한 평가, 또 안전성과 접근성도 살핀다.

거실에 깔아놓은 양탄자가 워커의 사용을 방해하는지, 워커에 쟁반이나 휴대형 가방을 장착하면 음식을 옮길 때 편리하지 않은지 등 사용자 입장에서 고려한다.

현관의 계단과 견고한 문은 노인 외상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다. 현관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계단을 없애고, 바깥에서부터 들어올 때 현관 조명은 충분히 밝은지, 또 현관은 넓고 안전한지, 보안은 잘 돼 있는지도 목록에 추가한다. 계단을 없애기 곤란하다면 발을 딛는 부위의 면적을 넓게 하고, 색을 칠해 구분을 쉽게 한다.

노인은 근력이 약하고, 동작이 굼뜨기 때문에 현관문이 쉽게 열고 닫혀야 하며, 서둘러 닫히는 일이 없도록 경첩의 개폐 강도를 낮춘다.

가정내 캐비닛 도어와 서랍 핸들은 C 또는 D모양이 좋다. 평가를 마치면 개선 항목의 필수 순위를 정해 견적을 낸다.

2) 수정과 적용하기

사전 평가를 했다면 여기에 기능성과 안락함을 추가한다. 자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세부적인 항목을 포함시킨다. 반면 개인의 신체적 여건에 따라 불필요한 항목은 조정한다.

일반인이 보기에 훌륭한 디자인일지라도 노인에게는 쓸모없는 군더더기일 수 있다. 예컨대 아름답고 예술적인 디자인이 이동이 불편하거나 시력·청력이 좋지 않은 노인에게는 불편함만 가중시킬 수 있다.

욕실 또한 심각한 부상을 입는 고위험 장소다. 바닥의 미끄러움을 방지하고, 옷을 갈아입을 때 넘어지지 않도록 의자와 안전 바를 설치한다. 또 샤워기의 위치는 손이 닿는 낮은 곳에 위치해야 하고, 물은 너무 뜨겁거나 차갑게 나오지 않도록 온도를 제한한다.

모든 선반과 냉장고는 쉽게 물건을 꺼낼 수 있도록 낮게 설계됐거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수납 선반은 회전할 수 있도록 한다. 앞뒤 양면에 수납할 수 있어 수납할 물건을 30%나 늘릴 수 있고, 넣고 빼기가 용이하다.

리모델링의 규모가 크면 전문가를 찾기 쉽지 않다. 이때는 미국건축가협회(AIA)를 활용해 전문가를 추천받는다.

참고로 전미주택건설협회(NAHB)는 미국보건계획협회(AAHP)와 함께 2002년부터 노인주택설계 전문가(CAPAS: Cedicated Ageing in Place Specialist)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CAPS는 노인 가정을 방문, 노인들이 안전하게 가정에 머무를 수 있도록 주택 리모델링 및 교육 등을 진행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엔 이런 프로그램이나 전문가가 없어 주택 개조는 모두 개인 몫이다)

주택 리노베이션의 규모가 크지 않으면 주위에서 인테리어 전문가를 찾아본다. 미국 내 인테리어 디자인학회(ASID)의 도움을 받아 해당 지역 전문가를 알아볼 수 있다.

3) 저비용 또는 Do-It-Yourself

노인의 신체기능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비교적 간단한 개선만으로도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예컨대 시력이 약한 사람을 위해 밝으면서도 눈이 부시지 않는 무광택 벽지를 바른다. 또

천장은 흰색을 사용해 실내조명을 보다 잘 반영해야 한다. 안전을 위한 눈부심을 줄이기 위해 바닥의 왁스칠은 가볍게 한다. 노년층은 시력이 떨어지므로 조도가 높은 조명기구를 사용하고, 전구가 직접 보이지 않는 간접 조명으로 눈부심을 줄인다. 계단은 상단과 하단에 전구를 배치한다.

특히 노인은 밤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한 두 번씩 반드시 일어난다. 이를 위해 발밑 조명이나 너무 밝지 않게 화장실 조명을 설치한다.

대비색(빨간색과 노란색이 가장 좋다)을 사용하면 뒷문이나 창고문 등 용도가 다른 방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컬러 테이프만으로도 계단의 위·아래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목욕탕의 안전바는 눈에 쉽게 띄도록 색과 위치를 배려한다.

용이한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가구를 재배치해야 하지만 갑자기 노인에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너무 큰 변화를 줘서는 안 된다. 또 모든 계단, 복도에는 양쪽에 핸드 레일이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 불편해도 다른 쪽에서 보완할 수 있어서다. 또 난간은 낙상하는 사람의 무게를 지탱할 만큼 충분히 강해야 하며, 바닥재는 충격을 완화하는 재질을 마련한다.

도어핸들은 레버형으로, 조명 스위치는 쉽게 켤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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