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재필기자
  • 입력 2015.11.25 17:54

1992년 통일국민당 창당..총선에서 31석 확보 '돌풍'…현실정치 꿈은 '좌절'

1992년 대선에서 유세중인 정주영 후보 <사진:현대그룹>

세계적 기업가로 존경받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또 다른 명함은 '통일국민당 총재'다. 기업인으로서 정치판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지만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 명예회장이 정치 참여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1988년 5공 비리특위 청문회였다고 한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열린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정 명예회장은 감당하기 힘든 굴욕을 겪었다.

"신군부와 결탁해 정치자금을 바치고 사업을 키웠다"는 청문회 의원들의 주장은 '사업을 하면서 부끄러움은 없다'는 스스로의 신념에 큰 상채기로 다가왔다. 정 명예회장의 정당에 참여한 한 인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정 회장은 나름 깨끗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자신을 비리기업인'으로 몰아가는데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솔직히 기업인에게 정치자금을 요구하는 쪽은 정치권인데 자신에 대한 정치인들의 공세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비리와 꼼수가 판치는 정치판을 기업인의 시각에서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이 정치 지도자가 돼서 나라를 바꾸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비리·꼼수'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 정치에 도전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정 명예회장은 통일국민당을 창당했다. 그해 총선에서 31개의 의석을 확보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의 지지에 힘입은 정 명예회장은 그해 대선에 도전한다. '반값 아파트' 공약이나 집권 1년 안에 국민소득을 2만달러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 등은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는 16.8%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김영삼·김대중 후보에 이은 3위에 그쳤다. '정치 신인'인 점을 생각하면 훌륭한 성적표였지만 14대 대선을 끝으로 그는 짧은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출신으로 오랫동안 정 회장을 보필했던 한 측근은 "원래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되돌아보지 않는 성격인데도 정치인으로서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서는 틈날 때마다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고 전했다.

◆'정치인' 정주영, 현실정치에 메시지는 던졌다

'짧은 정치인생'을 맛봤던 '정치인' 정주영은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당시 현실정치권에 던진 메시지는 아직 국민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비리와 꼼수가 판치는 정치로는 국민을 잘 살게 할 수 없다"는 그의 메세지는 당시 정치판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회의원 '31석'이라는 국민의 지지가 그 근거다.

그러나 그의 정치참여에 대해선 공(功)보단 과(過)가 더 크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선거전에 동원시켰고, 기업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관례로 남아있던 시절, 국민들은 기업인의 정치참여가 유착을 넘어 '정경일체'의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을 것에 대해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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