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7.08.12 05:00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고종관기자]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는 K씨(54)는 얼마 전 통증이 있는 발바닥에 체외충격파치료를 받았다. 1회에 10만 원씩 5회 치료를 받았으니 꼭 50만 원의 진료비를 낸 셈이다. 근골격계 체외충격파 치료는 비급여 대상이다. 고스란히 환자가 내야 할 몫이다.

비급여는 정부가 가격통제를 하지 않다보니 병원마다 치료비가 다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같은 체외충격파 치료라도 병원마다 5000원에서 36만7500원까지 무려 74배나 차이가 났다. 물론 장비가격(1000만원~2억 원)이 치료비 결정에 영향을 주지만 그래봐야 최대 20배 차이다. 그럼 과연 치료효과도 장비 가격의 차이처럼 74배나 될까.

고종관 의료전문기자

문제인케어를 보면 비급여의 급여화 부문은 ‘뇌관을 잘못 건드렸다’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이미 박근혜정부 때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문제로 진통을 겪지 않았는가.

비급여는 병원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급여 항목에 당혹해 한다. 그만큼 의료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가장 큰 골칫덩이다.

하지만 비급여 문제는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의료공급자의 사활이 걸려있어 해결하기가 난제 중에 난제다. 의료계가 결코 물러서거나 또 설득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벌써 의료계에선 전운이 감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곧이어 거리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치료비 중 본인부담율은 36.8%다.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다. 이는 국가의 의료보장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을 뜻한다. 2014년 기준, 환자가 낸 비급여 부담금은 무려 24조9000억원이었다. 과중한 의료비 때문에 실손보험을 별도로 들어야 되는 이유다.

총 수입 중 비급여는 병원이 가장 노출하기 싫은 항목이다. 병원의 젖줄이긴 하지만 환자들에겐 떳떳한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병원을 쥐어짜는 구조이다 보니 정부도 그다지 떳떳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의 손익계산서를 분석한 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의 경우 총 1조1914억원의 진료수입 중 27.4%인 3264억원이 비급여 수입이다. 이중 선택진료비(특진비)와 상급병실료가 전체의 43.4%를 차지했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건강보험하나로팀장 글에서)

이 돈을 급여로 전환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선택진료비를 받지 않고, 상급병실료를 보험수가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1000억원 이상의 수입이 증발된다. 당해 년도 서울대병원은 진료부문에서 54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체 50억원의 흑자는 장례식장, 건강검진 등 의료외 수입에 의존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전국 병의원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은 불 보듯 뻔하다.

신규 비급여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비급여 항목을 계속 개발하고, 환자에게 비급여 항목을 권하는 것이 곧 병원경영의 덕목(?)처럼 되고 있을 정도다. 병원마다 고가장비를 다투어 도입하고, 신기술을 적용하는 데는 바로 비급여 수입이 배경에 깔려 있다.

정부는 신포괄수가제로 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난관이 있다.

포괄수가제는 진료비 총액을 묶고 그 범위 안에서 치료를 하라는 제도다. 그렇게 하면 의사들이 값싼 치료방법을 선택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포괄수가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의료혁신 시대에는 맞지 않는 구시대적 제도다. 진단과 치료분야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나노기술, 사물인터넷이 속속 접목돼 신의료가 쏟아지는 시대에 과연 환자들이 저렴하다는 장점 때문에 옛날 방식의 진료를 원할까 하는 점이다.

걸림돌은 또 있다.

앞서 사례를 든 것처럼 비급여는 병원 임의대로 가격을 책정한다. 그러다보니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상급병실료 중 1인실은 11만원에서 45만5000원으로 4배, 초음파검사는 3만7900원에서 22만6300원으로 무려 7배나 차이가 난다.

문제는 이 가격을 단일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 재료나 장비 가격, 효과성 ,이해관계가 얽힌 업계 등 꼼꼼히 따져야 할 게 너무 많다.

이밖에도 비급여를 분류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사마귀 환자는 무조건 비급여인지, 사마귀제거술만 비급여인지, 또 만성피로 환자는 무조건 비급여로 할 것인지, 영양제만 할 것인지 등 환자 중심이냐, 시술 중심이냐도 혼란스럽다. (심평원 ‘국민의 적정부담을 위한 비급여 관리방향에서’)

의료행위에 따른 가격 산정과 용어의 표준화도 아직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 3800여 항목을 무 자르듯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는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정책 방향이다. 여기에 비급여 부문을 따로 떼어놓고서는 보장성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의료공급자에 대한 배려와 충분한 재원을 고민하지 않고는 제도가 성공할 수 없다. 2022년까지 비급여를 모두 건강보험 급여에 편입시킨다는 성급한 대책보다 중요한 것은 의료공급시스템 속에 만연화된 잘못된 비급여 관행부터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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