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7.08.15 15:39

누구를 위한 '치매국가책임제'인가요

[뉴스웍스=고종관기자] 치매(인지장애)가 가정뿐 아니라 국가의 큰 짐이 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그런 면에서 지난 대선 당시 ‘치매국가책임제’라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공약은 표심을 움직일 만큼 자극적이었다. 치매환자 72만명을 모시고 있는 가정은 적어도 이 공약 하나만으로도 새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졌을 법도 하다.

여기서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용어선택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치매는 한자 뜻대로라면 어리석음, 우매함이다.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차용한, 그야말로 어르신들에게는 ‘무례’한 단어다. 의학용어로는 인지(認知)장애다. 뇌 일부의 퇴행으로 인지기능이 떨어져 사회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질환이다. 일본도 치매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2002년부터 인지증으로 이름을 바꿨다.

용어가 ‘뭐가 그리 중한디?’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치매와 인지장애라는 단어 사용에는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칠 큰 차이가 있다. 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가 정책의 주체인지, 아니면 환자를 돌보거나 치료하는 기관이 주체인지의 차이다.

전자라면 인지장애 환자의 삶의 질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진다. 반면 후자라면 인지증 환자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거나, 치매기관을 설립하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인프라 확충에 돈을 쓸 것이다.

치매국가책임제는 다분히 후자를 위한 정책이다. 정부는 의료 및 돌봄 서비스를 위해 치매안심센터를 전국에 설치하고, 79개의 국립요양병원에 치매전문 병동을 확충한다. 가족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건강보험부담률을 10% 이내로 낮춘다. 심지어 경증 환자까지 관리대상에 포함시켜 요양등급과 급여혜택을 준다는 계획이다.

어찌 보면 전자나 후자 모두 결국 환자를 위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지장애 환자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시켜본 가족이라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현재의 요양시설은 한 마디로 ‘가둬두는’ 시설이다. ‘어리석고 우매한’ 환자를 가족으로부터 격리시키고 돌아가실 때까지 머물게 하는 임시 정거장에 불과하다. 환자가 입원한 시설엔 탈출(?)을 막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심한 경우 침대에 묶어놓기도 한다. 비좁은 병상과 후락한 시설, 훈련받지 못한 간병인 등 현장을 보면 어르신들의 삶의 질이나 인격은 찾아볼 수 없다.

치매환자는 시설 운영자에겐 돈벌이 수단이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우후죽순 생기다보니 환자유치에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여건이 안 좋은 시설에선 입원비 할인으로 환자를 유혹한다. 어찌됐든 일단 병상을 채우면 정부에서 꼬박꼬박 통장에 돈을 꽂아주니 이보다 안정된 수입원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요양시설 숫자다. 노인전문병원의 경우 2002년 54개에 불과했지만 15년 만인 현재 1372개로 늘어났다. 병상수로는 OECD국 중 단연 1위다. 65살 이상 1000명당 27.35 병상으로 일본 11.11, 핀란드 8.47 병상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 낙상환자나 뇌졸중 환자도 노인병원을 이용하지만 과잉시설만은 틀림없는 현실이다.

일본과 핀란드의 병상수가 우리보다 이처럼 적은 것은 노인에 대한 정책 변화로 시설 규모를 계속 줄여왔기 때문이다.

일본을 비롯해 독일이나 영국 등 우리보다 고령화가 일찍 시작된 나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지장애 환자에 대한 정책을 ‘시설중심’에서 ‘지역공동체’로 바꿨다. 환자 격리정책이 고비용저효율인데다 치료와 재활이라는 원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정책이어서다. 오히려 시설이라는 격리된 공간은 인지력 퇴행을 촉진시킨다. 실제 인지장애는 다른 사람과의 교감과 대화, 사회생활 등 지적 자극으로 얼마든지 늦출 수 있다. 게다가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정상 생활도 가능하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2012년 일본이 인지증 환자에 대한 기본방향을 일반인의 편견개선과 ‘환자 케어의 흐름’으로 바꾼 것은 좋은 예다. 집단시설에 입소하는 것보다 환자가 정붙이고 살아왔던 지역에서 치료와 생활을 병행하며, 병의 진행에 따라 가족과 환자에게 알맞은 서비스를 제공(Care Pass)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방문했던 덴마크의 호크백 마을은 이미 세계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국내에서도 성공사례가 있다. 경상북도가 2015년 10월부터 자체적으로 시작한 인지장애 공동체인 ‘치매 보듬마을’이 그것이다. 주민에게 교육을 통해 인지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환자와 더불어 건강하고 불편하지 않게 살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폐가에 호박터널을 만들어 배회공간으로 활용하고, 치매 고위험군 어르신이 닭을 기르는 ‘꼬꼬닭장’도 운영한다. 여기서 생산된 유정란을 직접 거래하는 인지훈련도 한다. 길을 잃지 않게 골목길을 확대한다거나 ‘바느질 공작소’와 한자공부 등 치매인지력 향상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미 이 사업은 성공적인 평가를 받아 도내 10여 곳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전국 지자체에서 줄지어 방문을 하고 있으니 곧이어 도시형도 나올 듯하다. 저비용고효율이면서 환자의 풍요로운 삶까지 보장해주는 시스템으로 자리잡아가길 바란다.

인지장애에 대한 국가 정책을 정할 때는 수혜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자문해야 할 것이다. 직접 시설을 찾아 어르신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이런 대우가 정의로운 건지,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는 없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자칫 인지능력이 떨어진 어르신을 내세워 돈을 버는 업자를 도와준다거나, 시설에 입소시키는 것만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까 우려스럽다. 치매국가책임제의 성공은 그들의 삶에 얼마나 공감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책은 그럴듯한 용어, 그리고 돈을 퍼붓는다고 성공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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