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1.30 10:47
중국의 '세한도(歲寒圖). 영락과 조락의 계절인 가을이 깊었고, 이제 곧 겨울이다. 모든 것이 움츠러드는 이 즈음의 날씨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우리 경제와 아주 닮았다.

우리말 속에 숨어 있는 한자가 참 많다.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해야 할까. ‘영락없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우선 문제 하나 내자. “나뭇잎이 무수히 떨어지니 영락없는 가을이다”라는 말은 성립할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있다.

‘영락(零落)’이라는 단어를 먼저 살피자. 앞의 글자 零(영)은 우선 숫자 ‘0’을 가리킨다. 그러나 앞서 얻은 의미는 다르다. 비를 가리키는 雨(우)에 명령을 의미하는 令(령)이 붙었다. 초기 자전(字典)의 뜻으로는 본격적으로 내리는 비가 아닌, 나머지의 비다.

굵은 빗방울로 떨어지는 본격적인 비에 앞서 내리는 작은 빗방울, 또는 굵은 비 내린 뒤 흩어져 내리는 비 따위 등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다시 번진 의미는 ‘이리저리 흩어지다’의 뜻이다. ‘영산(零散)’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여기저기 나뉘어져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영락(零落)이라고 하면 이리저리 흩어져(零) 떨어지는(落) 그 무엇을 지칭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풀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零(영), 나무가 기운을 잃어 잎과 가지 등을 떨어뜨리는 일을 落(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영락(零落)은 우선 풀이나 나뭇잎이 떨어지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나뭇잎이 무수히 떨어지니 영락없는 가을이다”라는 말은 성립하기 힘들다. 그러나 ‘영락없다’는 말이 우리 언어생활에서 ‘빠지거나 부족함이 없다’의 뜻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이를 두고 계속 시비를 일으키는 일은 영락없는 바보짓일 수 있다.

조락(凋落)도 이 가을의 식생을 두고 많이 쓰는 말이다. 凋(조)는 무엇인가에 의해 몸을 다치는(傷) 일이다. 특히 차가운 기운에 다치는 뜻을 품고 있어, 조락(凋落)이라고 적을 경우에는 ‘차가운 기운에 다쳐 떨어지다’의 뜻이다. 가을, 또는 겨울의 차가워진 대기에 잎사귀 등을 떨어뜨리는 식물에 잘 맞는 표현이다.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든든함을 알겠노라(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는 <논어(論語)> 문장,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 등이 다 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물이 시드는 모습은 직접 조사(凋謝)라고도 적는다. 뒤의 글자 謝(사)는 신진대사(新陳代謝)의 그 경우다. 오래 묵은 것이 사라지고, 떨어지는 일이다.

落(락)이라는 글자는 우리가 별로 반기지 않는다. 움츠러들어 잦아드는 현상은 쇠락(衰落), 뒤떨어지면 낙후(落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일은 추락(墜落),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낙제(落第) 등으로 적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기우는 모습이 역력하다. 원래의 체질이 문제였던 것일까. 차가워진 날씨, 줄어든 물, 그 위로 제 모습 드러낸 바위를 두고 소동파(蘇東坡)가 멋진 표현을 만들었다. ‘水落石出(수락석출)’이다. 거품이 꺼지면서 드러나는 문제점 잘 점검하자. 경기(景氣)의 기울어짐을 알리는 여러 징후가 모두 보통 이상이어서 그렇다.

<한자 풀이>
零 (떨어질 영, 떨어질 령, 영 영, 영 령, 종족 이름 연, 종족 이름 련): 떨어지다. 비 오다. 부슬부슬 내리다. 나머지. 영, 수(數)가 없음. 나이. 종족 이름.
落 (떨어질 락, 떨어질 낙): 떨어지다. 떨어뜨리다. 이루다. 준공하다. 두르다. 쓸쓸하다. 죽다. 낙엽. 마을. 빗방울. 울타리.
凋 (시들 조): 시들다, 이울다. 느른하다(맥이 풀리거나 고단하여 몹시 기운이 없다). 여위다. 슬퍼하다, 아파하다. 새기다.

<중국어&성어>
零落 líng luò: 본문 풀이와 같다. 단지 ‘영락없다’는 식의 표현은 중국어에 없다.
凋零 diāo líng: 사물, 특히 식생 등이 시든 모습을 가리킨다.
同是天涯沦(淪)落人 tóng shì tiān yá lún luò rén: ‘모두(同) 하늘(天) 가(涯)를 떠도는(淪落) 사람(人)이다(是)’는 엮음.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에 나오는 구절. 불우한 처지의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말이다.
秋风(風)落叶(葉) qiū fēng luò yè: 차갑고 사나운 가을바람에 휩쓸려 깡그리 떨어지는 낙엽.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水落石出 shuǐ luò shí chū: 풀이는 본문과 같다. 자연스레 진상(眞相)이 드러나는 일을 가리킨다. 거품이 꺼진 뒤에 드러내는 제 진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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