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17.10.30 09:10
김태기 단국대 교수

◆자본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중소기업의 혁신이 저조하고 생산성이 낮은 이유로 자본조달의 어려움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라도 혁신능력이 뛰어나면 자본이 몰려온다. 기업의 혁신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가 정신은 물론 종업원의 숙련 등 인적자본과 시장과 기술변화에 대응하는 조직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임금수준이 높아도 혁신이 활발한 미국에 각국 자본이 몰리고 같은 개발도상국가라도 창업의 열기가 넘치고 숙련 노동력의 확보가 용이한 나라에 자본 유입이 많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본이나 기계와 설비와 같은 유형 자산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 자산이 혁신을 이끈다는 점이다.

세계화와 지식경제로 전환하면서 무형 자산은 더 중요해진다. 기계나 설비에 매달리고 무형 자산의 중요성을 간과한 기업은 도태한다. 근로자가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혁신의 주체라는 평범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되고 있다. ‘새로운 평범한 비결’을 외면한 한국의 중소기업은 설 땅이 없어지고 있다. 고학력화와 대기업의 고임금정책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이 인건비 메리트에 집착하면 직원 채용이 어렵고 이직은 많아 혁신역량을 높이지 못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이규용박사 외(2012)에 의하면 신규 입사자의 평균연령은 중소기업은 35세로 대기업(29세)보다 높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초임은 격차가 유지되지만 근속연수가 올라가면서 커져 우수한 인력은 중소기업을 떠난다. 결국 부산대학교 김기성교수 외(2014) 분석대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의 60%가 근로자의 숙련 차이에 기인하게 된다.

◆한국의 중소기업 노동시장은 왜 무너졌는가?

한국의 중소기업 노동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단기적인 인력확보지원 사업으로 대응했다. 숫자가 100개 넘을 정도로 많지만 노동시장 변화와 동떨어지고 혁신의지가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으로 옥석구분 없이 지원해 실효성이 낮다. 근로자가 고학력화 되고 기업의 혁신을 무형 자산이 주도하지만 단순 노동력의 일시적 공급 확대에 주력하는 ‘철 지난 중소기업 인력정책’이 중소기업의 인력난과 높은 이직을 만성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이러한 모순을 피하는 방안으로 혁신형 중소기업정책이 주목을 끌었지만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광운대학교 이병헌교수(2009)에 의하면 혁신형 중소기업 인증에 관계없이 무형 자산에 대한 투자가 1% 증가하면 고용이 2% 증가했지만 인증이 기술우위의 판단에 치우치고 인적자본에 관한 비중은 10%도 되지 않는다.

고용의 90%를 중소기업이 맡기 때문에 중소기업 인력문제는 교육제도와 불가분의 관계다. 한국의 철 지난 인력정책의 핵심 원인은 교육이 노동시장 변화와 동떨어져 숙련형성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있다. 세계경제포럼(2015)의 인적자본지수는 한국이 124개국 중에서 대학진학률에서 1위로 가장 높지만 고숙련자의 비율은 61위, 숙련근로자 확보 용이성은 73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식경제로 전환으로 고숙련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도 Manpowergroup(2012)에 의하면 고용의 50%정도는 고등학교나 전문대 수준의 직업교육을 받은 중간 숙련인력이 차지한다. 한국은 교육에 대한 통 큰 투자에도 불구하고 직업교육 투자는 작고 직업교육이 아카데미즘에 빠져 부실하다. OECD(2016)에 의하면 한국은 취업하지 않고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니트(NEET)비율이 18%로 OECD국가 평균(15%)보다 조금 높지만 놀랍게도 고학력일수록 비율이 높아 고등학교 이하 졸업자는 OECD평균의 1/5정도로 낮은데 비해 대학 이상 졸업자는 3배정도 높다.

◆무엇이 실리콘벨리의 신화를 만들었나?

왜 세계 자본시장의 메카인 미국의 뉴욕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도 시골인 벤처중소기업 집산지인 실리콘벨리에 자본이 몰려들었을까? 그 이유는 ‘괴짜’들이 기발한 생각을 자유롭게 주고받고 현실에 옮길 수 있는 문화와 교육에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애국심이나 애사심이 아니라 무형 자산에 대한 파격적인 보상제도다. 미국의 혁신기업은 Lerner교수와 Wulf교수(2007) 분석에 의하면 종업원에 대한 보상의 액수가 크고 현금보다 스톡옵션 등 장기 보상에 중점을 두며 서비스업이 특히 그렇다. Kruse교수와 Freeman교수 외(2010)에 의하면 이러한 경향은 고성과 작업관행의 도입과 맞물려 전 산업으로 확대되어 미국 근로자의 50% 정도가 주식, 이윤, 성과를 공유하는 보상프로그램을 선택해 공유자본주의가 확립되고 있다. 프랑스는 아예 종업원 50인 이상 기업은 의무적으로 이윤공유제를 도입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어떻게 평범한 사람도 영웅이 되는 사회가 되는가?

모든 기업이 첨단 기업이 될 수 없듯이 모든 혁신이 수재의 머리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다. 수출제조업을 상징하는 독일의 히든챔피언 중소기업이나 제조업 강국을 떠받치는 일본의 중소기업은 마이스트나 모느즈쿠리 등으로 표현되는 장인정신이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 차이는 있지만 장인은 괴짜나 수재가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지만 취업하기 이전에 도제제도 등을 통해서 숙련을 습득하고 현장에서 기술을 연마해 고도화한다. 장인으로 커갈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종업원의 지적 재산권 인정에 있다. 독일은 종업원의 직무발명을 일본은 종업원의 영업 비밀을 기업이 보상하고 국가는 지적재산권으로 보호한다.

◆어디에서 차이가 날까?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국개발연구원의 안상훈박사(2005)에 의하면 고성장 중소기업은 인적자원 수준이 매우 중요한 변수이며 산업 차원의 연구개발 활동이 개별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외부효과가 크게 작용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미국이나 독일 등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제도적인 문제가 혁신에 대한 열의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김동배교수 외(2008)에 의하면 기업의 혁신은 인적자원관리와 양(+)의 관계지만 노동조합변수와 음(-)의 관계다.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제도가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종업원의 지적재산권 인정이 미비하다. 미국처럼 주식공유를 위한 우리사주제와 이윤과 성과공유를 위한 성과배분제도가 도입은 되어 있지만 녹슬어 있다. 우리사주제 도입은 사실상 상장 대기업에 한정되고 성과배분제도는 도입비율이 2013년 기준 평균 11.5%에 지나지 않으며 기업 규모가 작으면 더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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