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7.11.03 10:00

"낮은 상품성과 가격경쟁력으론 한국에서의 미래는 없다"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한국지엠이 한국시장을 단단히 오판하고 있다.” 지난 1일 한국지엠의 ‘올뉴 크루즈 디젤’ 미디어 시승행사를 보고 기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신제품에 대한 브리핑이 마친 뒤 질의응답 시간에 데일 설리반 한국지엠 영업·AS·마케팅부문 부사장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크루즈 가솔린 모델에 대한 질문에 “신차를 출시할 땐 제품, 가격, 포지셔닝, 프로모션 등 4가지를 고려하며 이를 모두 탁월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한다"며 "프로모션 측면에서는 초반에 강하게 진행했다가 다소 주저했는데 그 부분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고 답변했다.

결국 한국지엠이 판단한 크루즈 실패 원인은 ‘판촉활동의 부재’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크루즈 대신 경쟁사의 아반떼를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반떼가 상품성이 더 뛰어난 데다 가격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반떼에는 있지만 크루즈에는 없고 크루즈에 있는 건 아반떼에도 있다”

현대차 아반떼는 한국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은 모델이다. 아반떼 밸류플러스 등급은 1690만원이라는 가격에 스마트키, 17인치 휠, 열선시트, 후측방경고장치, 가죽시트 등 선호되는 고급사양들이 모두 적용됐다. 고급사양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같은 1690만원에 크루즈를 사려면 아무것도 없는 이른바 ‘깡통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심지어 최고등급에서 조차 통풍시트, 요추받침, 메모리시트, HID, LED 테일램프 등을 선택할 수 없다. 고급사양을 중시하는 한국 소비자 정서를 감안하면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무슨 배짱인지 아반떼 보다 높은 가격대를 책정하고 크루즈를 “차급을 뛰어넘는 고성능 프리미엄 세단‘이라 외치고 있다.

쉐보레 올 뉴 크루즈 디젤이 지난 1일 열린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주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애초에 크루즈는 ‘고성능’ 차량이 아닌데다가 준중형급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고려하는 첫 번째 요소는 성능보다 ‘경제성’이다. 한국 준중형의 ‘미덕’은 높은 연비와 저렴한 가격, 적당히 타협한 성능, 그리고 풍부한 편의옵션이다. 바꾸어 말하면 크루즈는 한국시장에 전혀 맞지 않는 모델이다. 크루즈는 가솔린과 디젤을 막론하고 아반떼 등 경쟁모델보다 연비도 낮고 편의사양도 없고 파워트레인 성능도 낮다. 그런데도 가격은 오히려 비싸다. 

한국지엠은 그런데도 “독일차에 견주는 고성능을 갖춰 뛰어난 상품성을 가지고 있다”며 높은 가격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지엠의 이러한 상품구성은 "팔리거나 말거나" 한국시장을 무시하는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지엠 관계자에게 “대체 아반떼보다 우월한 점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높은 토크’였다. 그러나 직접 시승한 결과 18인치 휠을 적용한 탓인지 악셀을 깊이 밟아도 전혀 토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RPM(엔진회전수)만 높게 치솟을 뿐 거동이 경쾌하지 못하고 무거웠다. 기자의 생각엔 무엇보다 엔트리급 준중형 모델 소비자에게 ‘토크’가 아닌 '저렴함'과 '연비'를 내세웠어야 했다. 

특히 한국지엠은 가격정책과 편의사양 뿐만 아니라 파워트레인 자체의 성능이 떨어지는데도 크루즈를 ‘고성능’이라 우기며 높은 가격표를 붙였다. 현대차 아반떼 디젤은 듀얼클러치 7단 미션에 1.6ℓ 디젤엔진을 달아 18.4km/ℓ의 연비를 낸다. 하지만 크루즈 디젤은 일반 인버터 6단 자동미션을 달고 16km/ℓ의 복합연비를 구현하는데 그쳤다. 디젤 모델은 통상 가솔린보다 200만원 가량 비싼데,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낮은 연비를 내는 모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더 가관인 것은 한국지엠 개발진의 시장인식 태도다. 공식 시승 일정이 끝난 후 황준하 한국지엠 차량구동시스템부문 전무에게 "DCT 개발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황 전무는 ”안락한 승차감을 원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변속충격이 심한 DCT 미션은 맞지 않다“고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글로벌 주요 자동차 제작사들은 뛰어난 연비 효율을 자랑하는 DCT 미션개발에 앞다퉈 투자하고 있고, 현대차 역시 아반떼 디젤을 비롯한 많은 모델에 DCT를 적용하고 있다. 아반떼와 크루즈의 연비차이도 DCT 때문이다. 

이날 데일 설리반 부사장은 “한국지엠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며 ‘한국 철수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지난달 내수시장에서 고작 7672대를 판매한 한국지엠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국지엠의 10월 전체 차량의 판매실적은 현대 한 차종(쏘나타 7335대)의 판매량과 비슷하다. 

잇따른 판매부진과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정작 한국지엠만 모르는 듯 하다. 소비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듣고 철저한 시장 분석과 경쟁력 갖춘 신차 투입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정말 이 땅에서 쉐보레 마크는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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