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17.11.06 10:14
김태기 단국대 교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정책의 허상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다름 아닌 거래관계의 문제다.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관계를 금과옥조처럼 강조하지만 대기업이 해외로 대거 진출하면서 허상을 쫓게 되었다. 대기업의 1차 하도급 중소기업은 줄어 소수에 지나지 않고 중소기업끼리의 거래가 대부분이다. 1차 하도급중소기업은 규모가 크고 대기업이 필요에 따라 기술 등을 지원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하도급을 받는 중소기업이 더 문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하도급실태조사(2014)를 보면 하도급단계가 내려갈수록 제조원가와 납품단가의 격차가 커지고 하도급계약서의 작성비율이 낮아진다.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정책은 하도급을 매개로 수직계열화 된 거래관계를 상정하는데 단계가 내려갈수록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간과하고 있다.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은 일본의 강점으로 한국이 따라가고 있지만 OECD일본보고서(2015)에 의하면 정작 일본은 바꾸려고 한다. 일본은 하도급이 게이오대학 키무라교수(2001)에 의하면 경제대국으로 성장에 기여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비중이 감소하고 중소기업의 수출과 기술력 및 수익성 개선에 장애가 되었다. 히토츠바시대학 후카오교수(2013)는 일본의 ‘비생산적인 잃어버린 20년’을 하도급거래를 상정한 중소기업정책이 세계화와 기술혁신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문제로 본다. 일본이 중소기업거래정책을 바꾸려는 이면에는 독일이 제조업의 진정한 강국으로 등극한데 따른 충격이 깔려있다. 독일의 중소기업은 하도급거래가 아닌 독립적 위치에서 수평적 거래를 하는데 이것은 혁신을 왕성하게 만드는 강점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다 글로블 가치사슬의 재편은 기회가 되어 지금은 널려 알려진 히든챔피언으로 올라서게 만들었다.

◆중소기업 혁신의 제1 자극제는 시장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수출기업’ ‘중소기업=내수기업’이라는 사고가 강하다. 이러한 도식적 사고는 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으려는 중소기업의 몸부림을 저하시킨다. 해외시장에 진출할 잠재력이 있어도 안주하게 만든다. 해외정보제공 등으로 중소기업의 수출을 지원해도 실제로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 수출중소기업의 비율이 낮지만 수출이 중소기업의 수익성은 높인다. Kim and Hemmert(2016)에 의하면 대기업의 하도급을 받는 중소기업의 30%가 수출을 하는데 눈여겨 볼 대목은 수출 성과에 대기업 퇴직 근로자의 하도급중소기업 취업 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거래관계를 넓히는 것 뿐 아니라 깊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거래당사자들의 신뢰가 정보부족을 해결하고 국제화에 성공요인이라는 점은 독일의 히든챔피언에서도 확인된다.

중소기업 혁신의 제1 자극제는 시장이다. OECD(2010)분석에 의하면 중소기업의 30~60%가 혁신 중소기업에 속하고, 혁신 중소기업의 90%는 시장에 의해 혁신이 주도되며 10%만이 기술을 기반으로 혁신을 추구한다.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도 나타난 특징이지만 수출시장에 진출한 중소기업과 해외에 투자를 하거나 해외로부터 투자자금을 유치한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높다. 세계적인 경제정보 분석기구인 EIU(2010)보고서는 일본의 중소기업이 유럽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중요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시장은 기술 기반 혁신도 자극한다. OECD(2015)분석에 의하면 중소기업이 간접 수출보다 직접 수출을 하는 경우 개방형 혁신이 활발하다.

◆글로블 아웃소싱 시대의 딜레마

세계화와 기술혁신은 중소기업의 거래관계를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 확대시킨다. 이러한 변화가 제조의 서비스화에 따라 내수기업으로 여겨졌던 서비스업에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생산의 일부를 맡기는 하도급을 넘어 사업의 일부를 통째로 맡기는 외주가 보편화되었다. 프린스톤대학의 Grossman교수와 하바드대학의 Helpman교수(2005)는 인류는 글로블 아웃소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글로블 아웃소싱이 되돌릴 수 없는 대세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익이 국가나 근로자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과 독일처럼 고숙련 근로자가 많은 나라거나 중국처럼 인건비가 싼 나라에는 이익이지만 한국처럼 그렇지 못한 나라는 저숙련 일자리가 줄고 노동시장의 양극화 압력이 커진다.

우리나라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안상훈박사 외(2013)에 의하면 글로블 아웃소싱이 국내로 들어오는 효과보다 해외로 나가는 효과가 크다. 대기업은 한국뿐 아니라 외국도 포함해 아웃소싱을 결정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외국기업과 경쟁을 하게 되면서 아웃소싱 조건이 열악해진다. 이러한 여파로 산업연구원의 김진웅박사 외 (2012)는 대기업은 하도급으로 중소기업에 비해 이익을 2.7배 크게 본다. 서비스업에서 아웃소싱 조건이 더 열악해진 것도 공정거래위원회 서비스업하도급 실태조사(2005)로 확인된다. 아웃소싱의 문제점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모두 규제를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아예 사내하도급 규제에 나섰지만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하도급거래의 공정성, 법으로 해결할 수 있나

하도급법을 강화하면 공정거래가 가능할까? 건국대학교 최정표교수(2012)의 주장대로 하도급거래는 장기적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원사업자와 소비자의 거래관계, 하도급 기업과 원료공급자의 거래관계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법제도의 강화만으로 공정성을 제고하기 어렵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이수일박사와 이호준박사(2012)에 의하면 이익공유나 성과공유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정책도 원가나 기술에 대한 정보공유가 납품단가 인하나 기술탈취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다.

하도급거래의 공정성은 Grossman교수와 Helpman교수(2005)의 주장대로 중소기업이 거래협상에서 지위가 올라가도록 전문성을 제고할 때 가능하다. 거래조건의 개선을 요구하고 안 되면 거래처를 바꿀 수 있는 협상력이 공정거래의 핵심 요건이다. 법이 신뢰를 쌓게 만들고 거래비용을 줄이는데 기여하지 못하면 혁신을 저해한다. 잘못된 규제와 간섭은 불신을 키우고 혁신에 집중해야 할 에너지를 분산시킨다. 하도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은 중소기업이 하도급거래에 미련을 갖게 만들고 전문화된 중소기업으로 전환하는데 혼란을 끼칠 수 있다. 독일의 중소기업 경쟁력은 법이 아니라 시장을 파고들어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전문성을 높이도록 여건을 만드는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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