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7.11.22 06:01

"최첨단·최초 일색 회장님 차" 후속 계획없이 20년 만에 단종 확정

쌍용자동차 대형 세단 '체어맨W' <사진제공=쌍용자동차>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회장님 차’로 불리며 지난 20여 년간 국내 대형 세단 시장을 이끌어온 체어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2일 쌍용차 관계자는 “체어맨W가 올해 연말까지만 생산되고 단종된다”며 “재고 소진을 위해 내년 3월까지는 판매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쌍용차가 체어맨W의 단종을 결정한 이유는 판매가 매우 부진한데다 후속 모델 개발 여력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체어맨W는 지난달 불과 33대 팔렸고, 9월에도 38대에 그쳤다.

체어맨W의 올해 1~10월 누적판매량은 504대로 한달 평균 50대 수준이다. 지난해 역시 같은 기간 790대 밖에 판매되지 못했을 정도로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체어맨W의 최대 경쟁차종인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의 EQ900가 올해 10월까지 1만553대나 팔린 것에 비하면 대조적이다. 특히 벤츠와 BMW의 기함인 S클래스와 7시리즈도 같은 기간 각각 4901대와 2641대씩 판매된 것으로 미뤄볼 때 체어맨 고객들이 제네시스와 수입차로 옮겨간 셈이다.

지난 1997년 첫 출시된 1세대 체어맨 <사진제공=쌍용자동차>

체어맨은 비록 현재는 설 자리가 없어졌지만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꾸준히 1만대 이상 판매되던 쌍용차의 ‘효자’였다. 체어맨은 지난 20년간(지난달 기준) ‘H’와 ‘W'를 합쳐 14만1374대 판매를 기록했다. 이는 연간 약 7000대 수준으로, 대형 세단이라는 점과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감안했을 때 준수한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1세대 체어맨은 1997년 출시 첫해 969대가 판매된 뒤 꾸준히 판매량이 늘더니 출시 5년 만인 2001년 연간 판매량 1만대를 돌파한다. 이후 다시 5년간 1만대 판매를 유지했는데, 2005년엔 1만5124대가 판매돼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체어맨은 2007년(9689대) 판매량이 한풀 꺾이며 첫 위기를 맞게 된다.

1세대 체어맨의 실내 모습 <사진제공=쌍용자동차>

하지만 이듬해(2008년) 곧바로 체어맨W가 출시돼 판매량이 회복됐다. 체어맨 'W'와 ‘H'는 2008년 각각 6244대와 6624대가 판매되면서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판매량이 꾸준히 급감하기 시작한 체어맨브랜드는 지난해 연간 판매량이 1000대 밑으로 떨어졌다. 이어 올해는 이보다도 떨어진 504대 판매에 그쳤다.

그간 체어맨은 이처럼 현대차 에쿠스와 판매량이 엎치락 뒤치락하며 국내 대형 세단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갖고 있었다. 특히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벤츠’의 엔진과 미션 등을 도입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만족도와 신뢰도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에쿠스가 ‘제네시스 EQ900'으로 변모하는 동안 회사 여건 상 후속 개발이 무산되면서 결국 단종에 이르게 됐다.

체어맨은 국내 대형 세단 시장에 큰 족적을 남긴 차종이다. 특히 지난 2015년 제네시스 EQ900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경쟁자인 에쿠스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상품성을 갖고 있었다. ‘체어맨’이라는 이름답게 지난 20년간 ‘회장님 차’로 군림해온 체어맨은 각종 첨단 기술을 탑재하며 ‘국내 최초’ 타이틀을 독식했었다.

사륜구동 4트로닉 시스템이 탑재된 체어맨W <사진제공=쌍용자동차>

20년 전인 1997년 1세대 체어맨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당시 국내 자동차업계로는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과시해 시장의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 최초로 ‘대용량 전방소음기’를 탑재해 실내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했고, 전자식 5단 자동변속기도 국내 최초로 적용했다. 현재는 보편화 됐지만 당시 획기적인 사양이었던 터치스크린 내비게이션도 국내최초로 도입했다. 또 운전자의 시트 포지션을 기억하는 메모리 시트 역시 1세대 체어맨이 최초다.

2003년 상품성 개선을 거친 ‘뉴 체어맨’ 역시 ‘최초’ 일색이다. DVD 3D 내비게이션과 EAS(전자제어 에어서스펜션), EPB(전자식 파킹브레이크), TPM(타이어 공기압 자동감지 시스템) 등 현재는 쉽게 볼수 있는 사양들이 뉴 체어맨에 국내 최초로 탑재됐다. 특히 2007년형에는 국내 최초로 차선이탈경고시스템(LDWS)까지 탑재돼 상품성을 더욱 강화했다.

체어맨W의 VVIP시트 <사진제공=쌍용자동차>

2008년부터는 체어맨이 2개 차종으로 나뉘어 판매됐다. 기존 체어맨 모델은 ‘체어맨H'로 명명돼 한등급 내려가고 대신 풀사이즈 쇼퍼 드리븐 모델인 ’체어맨W‘가 새로 등장했다. 체어맨W는 출시 당시 국내 최초로 V8 5.0리터 엔진과 메르세데스-벤츠의 7단 자동변속기, 4륜구동 시스템(4트로닉), 3세대 액티브 크루즈 콘트롤(세계 최초) 등을 탑재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쌍용차 관계자는 “체어맨 브랜드는 회사의 큰 자산이기 때문에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현재 후속 모델 개발 계획이 없어 체어맨 브랜드를 어떻게 사용할 지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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