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7.12.04 15:40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11월의 한국지엠을 보자니 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말이 떠오른다. 실속 없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는 사자성어다. 겉보기엔 부진을 탈출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뜯어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멀고 반등 의지도 안보인다.   

한국지엠의 쉐보레 브랜드는 지난달 내수시장에서 1만349대를 판매해 2개월 만에 월간 1만대를 다시 회복했다. 한국지엠은 지난 9월과 10월 각각 8991대와 7672대에 그치며 바닥을 찍었다가 드디어 반등에 성공했다. 특히 9월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내수 3위 자리를 쌍용차에게 내주며 체면을 구겼었다.

지난달 한국지엠은 판매 라인업 중 전월 대비 판매량이 줄어든 차종이 카마로가 유일할 정도로 꽤 선전한 모습이다.  특히 스파크, 크루즈, 말리부, 트랙스 등 주력 차종들의 판매가 전월 대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완성차 5개사 중 지난달 내수시장에서 전월대비 판매량이 늘지 않은 업체는 없다. 업계 꼴찌인 르노삼성차 마저도 전월 대비 30.8%나 판매가 늘었다. 연말은 재고 처리를 위한 대대적인 할인 프로모션 때문에 자동차업체들의 계절적 성수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지엠이 판매량 1만대를 회복한 것은 내부적 요인이 아닌 외부적 요인의 결과로 봐야 맞다. 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던 지난 10월에 비해 반등했을 뿐 지난해 같은 기간에 기록했던 1만7236대에 비해서는 무려 40%나 감소했다.

또 지난달 구체적인 판매량을 살펴보면 타사의 경쟁 차종을 이긴 주력 차종도 전무하다. 한국지엠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파크는 지난달 3806대 팔린 반면 기아차 모닝은 6010대를 기록했다. 한술 더 떠 현대차 그랜저는 혼자 1만181대나 판매돼 한국지엠의 12개 차종 총 판매량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4‧5위를 기록한 쌍용차와 르노삼성차를 보며 위안을 삼을 수도 없다. 쌍용차는 애초에 회사 규모도 작고 판매차종도 5종 뿐이어서 그만큼 소요되는 비용도 적다. 르노삼성도 내수 꼴찌이긴 하지만 수출이 무려 38.7%나 급증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총 판매량이 0.8% 늘었다. 지난해 대비 총 판매량이 증가한 자동차 업체는 르노삼성이 유일하다.

게다가 쌍용차와 르노삼성차는 각각 평택과 부산에 한 곳씩 공장을 두고 있지만 한국지엠의 공장은 부평‧군산‧창원 등 3곳에 이른다.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야 할 한국지엠의 생산라인들은 판매부진으로 쉬는 날이 더 많다.

올뉴 크루즈 디젤이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와인딩 구간을 주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한국지엠이 부진의 깊은 터널에서 잠시 빠져나온 것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살짝 반등했다고 해서 당장 이달과 내년 상황을 낙관하기는 매우 어렵다. 경영이 정상화될 긍정적 요인이 아직까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업계의 트렌드는 SUV와 더불어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가고 있는데 한국지엠은 남의 일보듯 하고 있다. 

한국지엠의 SUV 판매 라인업은 캡티바와 트랙스 뿐인데 캡티바는 출시된 지 무려 7년이 지난 모델이다. 후속인 에퀴녹스는 출시 시기는 물론 수입 할지 국내생산 할지 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또 친환경차인 하이브리드차는 말리부가 유일한데 이마저도 판매부진으로 단종위기다. 그나마 기대주인 전기차 볼트EV는 물량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난달 불과 82대 팔렸다.

노조와의 갈등도 돌파구가 안 보인다. 한국지엠의 노사는 올해만 18차에 걸친 임금 협상을 진행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한국지엠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로서 좀 더 책임감 있는 경영태도를 보여야 한다. 한국지엠은 협력사 포함 30여만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고 더 나아가 부평‧군산‧창원의 지역경제까지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누적 적자가 2조원에 이르고 ‘한국 철수설’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 상황에서 “제대로 해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 이대로라면 한국이 호주, 인도, 유럽 등에 이어 GM 철수 국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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