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교수
  • 입력 2017.12.28 13:53
김태기 단국대 교수

◆균형 이동과 사회계약

국가마다 경제활동을 규율하는 사회계약이 나름대로 존재한다. 경제주체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율하는 사회계약의 질적 수준이 높으면 성장과 분배가 좋은 균형에 도달하지만 수준이 낮으면 나쁜 균형에 머문다. 선진국일수록 사회계약의 수준이 높은데 우리나라는 사회계약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공공자원과 규제를 활용하면서 사회계약의 중심에 자리 잡았지만 경제규모가 커지고 거래가 복잡해지면서 경제주체들의 권리와 의무관계를 정부 주도 사회계약으로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는 경제주체들의 신뢰와 자발성을 저하시키고 다시 정부가 사회계약에 더 깊이 개입하게 만들어 불신의 악순환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후퇴시켰다. 정부는 힘이 부대끼자 대중소기업협력을 내세우면서 한국경제의 균형을 이동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대중소기업의 이중구조가 오히려 악화되면서 이러한 시도도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모순에 빠진 한국의 사회계약

정부 주도 사회계약이나 대중소기업협력에 기초한 사회계약이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생산요소의 핵심은 금융자본과 인적자본인데 금융자본을 조성하는 은행과 인적자본을 형성하는 학교가 사회계약의 핵심 주체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순이 누적된데 있다. 금융 산업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학교는 인력양성과 연구개발을 담당한다. 그러나 둘 다 정부의 지시감독이나 통제를 받는 대신 보호를 받으면서 온실 속의 난초처럼 커왔다. 은행은 중소기업에게 자금을 지원해도 정부의 지급 보증을 요구하는 반면, 금융소비자인 대출 중소기업에 대해 책무성을 다하지 않았다. 교육과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학교는 더 심각하다. 학생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의무나 산업계의 혁신에 기여해야 할 책임은 외면하고 정부의 지원만 바라는 권리의무의 불균형이 도덕적 해이를 키웠다. 중소기업은 은행이 수익을 내고 학생이 취업을 하는데 기여하지만 상응하는 도움을 받지 못해 사회계약의 기초인 상호성의 원리가 무너지고 있다.

◆대중소기업 협력관계의 한계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협력은 사회계약 원리에 비추어 보면 모순이 많다. 정부의 지원보다 규제를 많이 받는 대기업보고 동반성장이나 상생협력을 내세우며 중소기업을 도와주라는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화로 대기업이 무대를 해외로 옮기고 제조업도 서비스화 되면서 기존의 대중소기업 협력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인건비가 싼 해외에서 생산하고 기술이나 디자인 개발 등 핵심 업무는 선진국 기업의 힘을 빌었다. 국내에 남아있는 중소기업은 돌아올 일거리가 줄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맡긴 일도 다시 다른 중소기업에 하청으로 넘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기술지원 등을 받기 어려워진 반면, 중국 등 후발개도국으로부터 거세게 추격당하는 것을 방치했다. 중소기업이 나 홀로 함정에 빠져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실효성 없는 대중소기업협력에 매달려 사회계약의 붕괴와 경제의 균형 악화문제가 커졌다.

◆산학연 협력관계의 방치

한국보다 덜하지만 일본도 이러한 문제에 처해 있다. 일본은 대중소기업 협력관계의 한계를 경험하고는 중소기업이 강한 미국이나 독일처럼 산학연협력을 지향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홀로 서도록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지 않고 산학연협력을 부차적인 과제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은 물론 미국이나 독일보다 산학연협력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공공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국제기구에서 계속 지적해왔지만 우리나라 사람만 잘 모르고 간과하는 사실은 한국이 OECD국가 중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자금 지원이 가장 많은 국가에 속하고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과 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도 가장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공공자원의 막대한 투입에도 불구하고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이 기술과 인력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환경을 만드는데 활용되지 못해 결국 산학연협력은 말로만 했고 공공자원의 낭비문제는 더 커졌다.

◆빅 푸시(Big Push), 균형 이동의 동력

한국경제의 균형 이동은 대중소기업협력에서 산학연협력으로 전환을 요구한다. 중소기업이 홀로 서도록 산학연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비행기의 이륙처럼 충분한 동력을 공급하는 빅 푸시 전략이 필요하다. 찔끔찔끔 변화로 산학연협력에 의한 중소기업지원이 성공할 수 없다. 중소기업의 홀로 서기를 지원하는 산학연협력은 관련 정책의 일관성과 연계성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토대위에 정부가 공적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산학연협력에 불을 붙일 수 있다. 금융 담당하는 부처는 중소기업문제가 정부의 재정지원이나 보호라며 뒤로 빠지고, 교육 담당 부처나 연구개발 담당 부처 등은 산학연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입시중심의 교육을 학생들의 취업 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하고, 국가혁신시스템을 연구개발에서 중소기업으로의 기술전파나 공유로 확대하고, 금융질서를 정부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는 공급자 중심에서 대출 중소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강한 허리, 지자체의 역할

우리나라는 빅 푸시 전략의 성공모델로 평가된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자원을 대거 투입하고 집중 지원함으로써 도약에 성공했다. 중화학공업은 주체가 소수의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할 수 있었지만 중소기업은 다양하고 지역이 생산과 소비의 주된 기반이기 때문에 광역지자체가 정부와 중소기업을 잇는 허리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같은 북부 유럽 국가로 산학연협력이 활발한데 혁신의 역설이 달랐다. 스웨덴은 투자 대비 수익이 낮아 혁신의 역설이 음(-)인 반면, 노르웨이는 반대로 양(+)인데 그 이유는 스웨덴은 권한이 중앙 집중적인 반면, 노르웨이는 지역으로 분권화된 차이에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비해 생산현장에서의 점진적 기술혁신과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비공식적 교육훈련을 보다 중시한다. 독일도 마찬가지인데 이 점에 비추어보면 광역지자체가 교육과 노동, 산업과 연구개발을 묶는 지역혁신시스템과 지역인적자원개발시스템을 관리하고 고용과 교육행정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교육에 대한 산업계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홀로 선다는 각오, 중소기업의 자각

홀로설 수 있는 중소기업을 키워 한국경제의 균형을 이동시키는 일은 정부의 역할 조정만으로 불가능하고 중소기업의 각오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중소기업과 단체의 지위를 부여할 정도로 국민들의 기대가 크지만 중소기업의 자발적 노력은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소기업 스스로 기업가정신을 키워야 한다. 정부의 지원과 보호는 물론 대중소기업협력이나 산학연협력도 중소기업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소기업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가정신을 키우는 요인은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소비자나 기업 단체의 역할이 크다. 정부에 길들여진 중소기업단체가 아니라 할 말은 할 수 있도록 내부개혁을 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노동계에 대해서도 중소기업의 생존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는 힘은 중소기업단체의 투명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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