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08 11:39

(2) 위기 속의 상황 판단-5

1950년 11월에 벌어진 아군의 진격
유엔군은 중공군을 잘 알지 못했다
상대를 모르고 펼치는 싸움의 끝은?
 
>전쟁의 초연 속에도 선율은 흐른다. 1950년 11월 초 무사히 후퇴를 벌여 평양 인근의 입석 비행장에서 부대 휴식과 정비를 하고 있던 국군 1사단에게 기쁜 선물이 주어졌다. 위문공연단이 찾아와 전쟁에 지친 장병들을 위로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군 1사단은 중공군의 포위에 들어서기 직전 신속한 후퇴를 감행했다. 이어 미 1기병사단의 1개 연대가 중공군 공격으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한국군 1사단이 배속한 미 1군단 전체는 커다란 피해를 보지 않았다. 적이 강하고 약하느냐에 상관없이 저들이 펼친 포위의 그물망에 들어섰더라면 미 8군의 핵심인 미 1군단 또한 참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 점은 다행이었다. 만약 미 1군단 전체가 무너졌다면 한반도의 전쟁은 공산군 측이 의도하는 대로 흘렀을지 모른다. 
 
 

> 전쟁에 나선 미군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미군은 중공군 1차 공세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미 1기병사단의 1개 연대가 중공군 포위를 뚫지 못해 그 속에 갇힘으로써 상당수의 전사자와 포로가 생겨났다. 그런 아픔 속에서도 미군은 꿋꿋하게 버텼다. 전쟁은 수많은 아픔을 낳는다. 그럼에도 적을 맞아 싸워야 한다. 그러나 1950년 11월에 접어들면서 불안감은 커져가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군대, 중공군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해 10월 말 거센 공세를 벌이다가 11월 중순에 들면서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예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또 매복을 하면서 아군을 기다리는 것일까.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는 대목이었다.

  
 
> 정비와 휴식을 한 뒤 한국군 1사단이 또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평안북도 박천 방향이었다. 맥아더의 도쿄 유엔군 총사령부는 이 즈음에 또 공세 명령을 내린다. 크리스마스 이전에 압록강까지 진출해 전쟁을 마무리하라는 내용이었다. 뭔가 또 불길했다.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났던 중공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적정(敵情)은 그래서 캄캄했다. 스스로의 힘은 알았으나, 상대를 알아보려는 지피(知彼)에서 유엔군은 실패했다. 이로써 나오는 수는 패착(敗着)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상대를 모르고 치르는 싸움, 어두운 밤길에 아무런 불빛 없이 길을 가는 일과 같았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공격을 가해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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