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1.19 06:00

경영권 승계 맞물려 진퇴양난...계열사 인적분할 지주사설립 유력

현대자동차그룹 양재동 사옥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정부로부터 ‘자발적 지배구조 개혁’ 데드라인을 받은 현대자동차그룹이 벼랑 끝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순환출자고리, 전속거래, 수직계열화 등 산적한 난제들을 한 번에 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위해 ‘지주사 설립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현금 확보 문제로 가시밭길이 예고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출범 초기부터 재벌 대기업들의 ‘셀프 개혁’을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개혁의 1차 데드라인을 주주총회가 있는 올해 3월 말까지로 한정했다. 

주요 대기업 중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1월 공정위가 발표한 ‘2017 공시대상 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에서 삼성전자 등과 함께 순환출자를 보유한 기업집단으로 분류됐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핵심계열사들이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0.78%를,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의 33.88%, 다시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특히 그룹 총수인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의 지분을 각각 6.96%, 5.17%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가 총수 일가의 지배권 유지에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혁은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맞닿아있어 쉽게 해법을 찾기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의 가장 현실적인 지배구조 개선 방향은 롯데그룹과 같은 ‘지주사 설립’으로 기울고 있다. 업계와 증권가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지주사를 통해 정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와 순환출자 해소를 어떻게 동시에 실현하느냐다. 

글로벌 증권사인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초 ‘현대차 지주사설’과 관련한 보고서를 내놓고 “현대차그룹은 현금 여력이 많고 브랜드 저작권을 갖고 있어 지주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주사 설립은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3개 회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 한 후 3개 회사의 투자부문을 합병하는 방법이 유력하다. 이렇게 되면 그룹 내 3개 핵심 계열사의 비용지출을 최소화 할 수 있고 지주사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분율도 20% 이상으로 증가해 지배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 부회장이 갖고 있는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팔거나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23.3%를 가진 정 부회장이고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셀프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건 ‘돈’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순환출자는 한 계열사가 흔들리면 그룹전체가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은 체력을 튼튼히 만드는 선진형 구조”라면서도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약 6조원 가량 들어가는데 부진을 겪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그럴 여력이 없다”고 진단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자동차 담당 선임연구위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순환출자 방식은 과거엔 효율적이었으나 자동차 산업의 새판이 짜여지는 현 시점에서 선행기술이 없는 현대차그룹에 불리하다”며 “하지만 최근 현대차그룹의 이익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순환출자는 대기업을 총수가 개인기업 부리듯 운영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하지만 현대차그룹에 얽힌 역학관계가 복잡해 누구도 쉽게 향후 시나리오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공정위는 현대차그룹이 개혁에 나서지 않을 경우 관련 제재에 나설 전망이다. 법률·재정적 수단을 통해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편법·불법 경영승계를 막겠다는 복안이다. 

구체적으로는 해소해야할 순환출자 범위를 신규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또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원칙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도 도마 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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