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1.20 08:00

경영진 판단 착오·노조 발목잡기 그만… "바뀌어야 산다"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해를 넘겨 진행됐던 현대차와 기아차의 임단협이 지난주 모두 타결되면서 국내 완성차5개사의 2017년 임단협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가 숨을 고르기엔 아직 이르다. 진짜 숙제는 지금부터이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케케묵은 ‘과제’를 안고 있지만 도무지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문제들을 차근차근 돌이켜보고 돌파구를 마련해야할 시점이다. 

첫째, 국내 자동차 산업의 ‘고비용 저생산’ 구조를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 특히 현대차 생산직의 생산 구조를 예로 들면 일본 토요타, 독일 폭스바겐 등 글로벌 주요 자동차사보다 연봉은 1000만원 더 많은데 생산량은 30%나 낮다. 게다가 현대차 노조는 해외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영권 간섭에도 열을 올리며 매번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신차를 개발하더라도 노조의 승인이 없으면 생산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구조다.

매년 ‘연례 행사’가 된 파업은 말할 것도 없다. 현대차 공시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해 8월부터 이달까지 총 172시간동안 파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총 7만484대의 생산차질을 빚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5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사실 노조의 파업은 대기업인 제조사보다 2~3차 협력사들에게 직격탄이다. 실제로 한 협력사 직원은 하부영 현대차 노조지부장 블로그에 “2~3차 협력사들도 살려달라. 언제 회사가 없어질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다”며 “모두 가정이 있는데 땅바닥으로 내몰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 달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둘째, 글로벌 스탠다드에 뒤처진 경영진의 판단도 바뀌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4년 서울 삼성동의 한전부지를 무려 10조5500억원에 매입했다. 현대차그룹은 이 자리에 2022년까지 총 연면적 92만8887㎡, 105층 규모의 신사옥(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연구개발에 쏟아 부어도 모자를 막대한 현금을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각국 글로벌 업체들은 저마다 미래차 기술 선점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데 현대차그룹은 구호성 투자 ‘계획’만 발표할 뿐이다.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자율주행차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주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미래를 위한 결단과 투자가 원활하지 않다보니 적기 신차 투입과 선행 기술 확보도 항상 늦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선 고급차와 SUV가 잘 팔리는데 정작 현대기아차는 허구한 날 엔트리급 소형 세단만 내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시장의 부진을 ‘사드’ 때문이라며 자기 위안할 뿐이다. 2위 시장인 미국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는 픽업트럭은 대체 언제 출시될지 예상조차 힘들다. 지난해 출시된 소형 SUV 코나도 이미 3년 전에 선보였어야할 차지만 쌍용차 티볼리의 흥행에 놀라 부랴부랴 나왔다.

전문가들은 선행기술인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역시 경쟁업체들에 비해 약 3~4년 뒤떨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등 현대기아차의 미래차 기술력은 주요 글로벌 업체 대비 85% 수준”이라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경영진이 미래를 위해 어떠한 결단을 내리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넷째, 국내 자동차 산업의 독점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외국계 업체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사실상 현대기아차의 독점 구조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장의 현대기아차 점유율은 무려 66%에 이른다. 문제는 한국지엠, 쌍용차, 르노삼성 등 외국계 3사는 반격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심각한 부진에 허덕이는데 판매 라인업은 모두 구형 일색이다. 한국지엠이 판매하는 캡티바는 지난 2008년 지엠대우 시절 출시된 ‘윈스톰’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이라 사실상 SUV는 트랙스가 유일하다. 올뉴 크루즈 디젤 같은 신차가 나와도 현대기아차 대비 100~300만원 이상 비싸다보니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내수 꼴찌인 르노삼성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SM3와 SM7, SM5는 각각 르노 본사가 수년 전 단종시킨 구형 플루언스, 탈리스만, 그리고 래티튜드의 현지화 모델이다. 특히 현행 SM7의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이 SM6임에도 르노삼성차는 오히려 급을 올려 ‘대형세단’으로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최근 자율주행차와 친환경차 등의 미래차로 인해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특히 업계 간 장벽이 사라져 IT업체나 통신사들도 앞다퉈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정도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바뀌지 않으면 우리 자동차 산업은 미래가 없다. 선행 기술을 확보하고 미래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업계의 정확한 판단력과 결단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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