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08 16:40
청나라 문인 고염무(顧炎武)의 초상. 절개와 높은 수준의 학문으로 이름을 떨친 그는 염치에 관한 글로도 매우 유명하다

청렴하면서도 부끄러워한다? 염치(廉恥)라는 말 우리는 생활 속에서 입에 제법 많이 달고 지낸다. ‘염치불고(廉恥不顧)’라는 말은 무엇인가 남으로부터 받기가 쑥스러울 때 쓴다. 염치가 아예 없어 남들로부터 비난 받는 사람은 얌체라고 한다. 모두 염치를 중심으로 번진 말이다. 그럼에도 염치라는 말 자체는 제대로 뜯어볼 기회는 적었다.

따라서 우선 글자 풀이를 해보자. 廉(렴)은 건축과 관련이 있는 용어다. 건물의 측변(側邊)을 가리킨다. 건물이 바르게 올라가기 위해서는 주변을 이루는 선들이 곧아야 한다. 이로부터 우선 번진 뜻이 ‘바르다’다. 그로부터 더 나아가 얻은 새김은 ‘청렴하다’다.

恥(치)는 귀(耳)와 마음(心)의 합성이다. 귀로는 옳고 그름, 시비(是非)를 들을 수 있다. 마음으로는 착함과 나쁨을 가릴 수 있다. 그러니 이 글자의 뜻은 자명해진다. 그로써 얻은 뜻이 ‘부끄러움’이다. 잘못, 그릇됨, 악함 등으로 제 행위를 어지럽힐까 부끄러워하는 일이다.

둘은 줄곧 붙어 다녔다. 유학의 가르침을 꽤 오래 떠받든 한반도에서는 예의(禮義)와 함께 이 염치를 거의 최고 수준의 도덕으로 여겼다. 그러니 염치를 따지는 문화가 퍽 발달했다. ‘염치불고’ ‘얌체’ 등이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점을 따져도 그렇다.

청(淸)나라 문인 고염무(顧炎武)의 문장이 꽤 유명하다. 그는 염치를 사람이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덕목 중에 가장 큰 것으로 봤다. “사람이 바르지 않으면 취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蓋不廉則無所不取),부끄러움을 모르면 행하지 않는 일이 없다(不恥則無所不爲)”고 했다.

염치 모두 중요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부끄러움, 또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마음이 없을 경우 뭐든 제게 이롭다면 거리낌 없이 다 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도 그럴진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는 일은 시간의 문제라고 봤다.

대의(代議) 정치의 상징이자 선거를 통해 뽑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의 선량(選良)이라는 이름까지 얻는 우리 국회의원들이 문제다. 그 모양새 또는 명칭과 달리 우리에게 실망을 잔뜩 안기는 사람들이다. 이익만을 좇는 저자거리의 장사꾼과도 같아 정상배(政商輩)라는 말을 들은 지도 오래다.

무능과 함께 비리, 부정의 모습도 연출하는 일이 잦다. 정쟁만을 일삼는 데서 얻는 야유와 비아냥거림은 이제 더 이상 화제도 아니다. 그런 국회의원들의 끝 모를 탐욕을 보여주는 장면이 또 나왔다. 제 비서관들의 봉급을 일부 떼도록 해서 상납을 받은 여당 소속 의원이 요즘 화제다.

염치의 끝없는 추락이다. 대의정치의 총아라면서 마냥 높은 대우를 받으며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드는 이 사람들에게서 일말의 부끄러움마저 사라졌다면 큰일이다. 그로써 우리에게 닥치는 일은 무얼까. 청나라 문인 고염무는 혼란과 패망이라고 적었다. 亂亡(난망)이라는 한자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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