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09 17:50
조선의 건축 중에서도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매우 유명한 창덕궁 안 낙선재 모습. 서까래가 밖으로 흘러내리는 곳이 처마다. 한자 檐下(첨하)에서 비롯한 낱말이다. 남의 집 처마 밑에 내가 있다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까.

집을 지을 때 서까래가 밖을 향하도록 만든 곳이 처마다. 지붕에 내린 비는 이 처마를 타고 땅을 향해 흘러내린다. 그래서 처마는 운치가 있다. 많은 비가 떨어질 때 처마에서 긋는 비의 모습이 많은 감상(感想)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 처마는 한자로 적을 때 檐(첨)이다. 게다가 다시 ‘아래’를 가리키는 글자를 붙이면 첨하(檐下)다. 이 한자 낱말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처마’로 발전했으리라고 본다. 제 집 처마에 서서 비를 바라보고, 그 소리를 듣는다면 별다른 감흥은 없으리라.

남의 집 처마에 서 있을 때가 문제다. 세상 먼 바깥으로 떠도는 사람이 남의 집에 묵는 일은 기숙(寄宿)이다. 제 거소(居所)를 떠나 먼 세상에서 떠도는 사람이 남의 집에 몸을 잠시 들여 신세를 질 때다. 그런 경우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비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함께 남에게 몸을 의탁했을 때의 애처로움도 준다.

그래서 남의 집에 머물면서 때로 그 처마 밑에 설 때의 느낌은 밝지 않다. 여러 복잡한 심사(心思)가 실타래처럼 엉키다가 결국은 애상(哀傷)함이 주조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 전해져 오는 속언이 그를 말해준다. “다른 이의 처마 밑에 서면, 머리를 수그리지 않을 수 없다(人在屋檐下, 不得不低頭)”는 말이다.

몸을 의탁한 집이 고대광실(高臺廣室)의 지체 높은 사람 집보다는 그저 평범한 사람의 집일 경우가 많았을 게다. 그런 집의 처마 밑에 서면 몸을 구부려야 정상이었을 테다. 그 점을 말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말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도 함께 이야기한다. 비록 남의 집에 몸을 의탁한 신세일지라도, 그런 현실을 일단은 받아들이면서 좀 더 나은 개선의 방도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현실의 문제를 차분하게, 큰 틀에서 헤아림으로써 옳은 방향을 찾으라는 깨우침이기도 하다.

그런 처마 밑에서 함부로 고개를 들면 많은 어려움이 찾아든다. 제 머리를 스스로 깨는 일이 있을 수 있고, 쓸 데 없이 처마를 무너뜨려 손해를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현실의 조건을 수용하면서 비 그친 뒤 떠날 길을 헤아려야 하는 법이다.

남의 처마 밑은 그래서 중요하다. 檐下(첨하)라는 한자 낱말도 제가 처한 지금의 경우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의 복합적인 고려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처한 현실이 역경(逆境)일수록 제 몸을 낮춰 많은 것을 생각하며 행동해야 함도 일깨우고 있다.

자비(慈悲)의 큰 집, 조계종 본사에 몸을 들여 세간의 화제 중심에 있는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에게 건네주고 싶은 이야기다. 2000만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그 명분은 높고 굳세 보이지 않는다. 민노총 소속의 노동자를 대변한다면 딱 그 정도다. 한 위원장 스스로 몸을 의탁한 큰집이 마침 부처의 구세(救世) 이념인 자비의 본당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조계종을 향해 자비를 구하고 있지만, 스스로 먼저 그런 자비의 본뜻을 헤아리기 바란다. 폭력과 욕설이 난무한 시위는 그런 자비와 크게 떨어져 있다. 이왕 몸을 그곳에 들였으면 머리를 숙이고 자비가 지닌 포용성과 헤아림, 나아가 사랑을 먼저 생각할 일이다.

그를 비롯해 민노총 소속의 수많은 노동자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집에 몸을 들였다는 점도 잊지 말기 바란다. 그곳에서는 공동체의 큰 어울림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차갑고 시린 이 겨울의 날씨처럼 대한민국의 경제가 모진 시련의 길에 들어선 이때는 더 그렇다.

 

<한자 풀이>

檐 (처마 첨, 질 담): 처마. 전(甎ㆍ塼)(화로ㆍ갓 따위의 벽돌). 지다(담).

慈 (사랑 자): 사랑. 어머니. 자비. 인정, 동정. 사랑하다.

悲 (슬플 비): 슬프다, 서럽다. 슬퍼하다, 마음을 아파하다. 슬픔, 비애. 동정, 가엾이 여기는 마음, 가엾게 여겨 은혜를 베푸는 일.

 

<중국어&성어>

飞(飛)檐走壁 fēi yán zǒu bì: 처마 위로 날아오르고, 벽을 달리다. 무술이 높은 사람의 빼어난 재주를 일컫는 말이다.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무예의 고수, 또는 그의 무공.

寄人檐下 jì rén yán xià: 남의 집 처마 밑에 묵다. 남에게 얹혀사는 일을 가리킨다. 寄人篱(籬)下 jì rén lí xià와 같은 말이다.

人在屋檐下, 不得不低頭 rén zài wū yán xià , bù dé bu dī tóu: 출처는 명확하지 않은 속담이다. 뜻은 본문 참조.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