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2.08 06:18

고급유 썼는데도 '순정' 아니면 무상수리 거부...전문가도 "부당"

<사진=현대자동차>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국내 자동차업계를 주도하는 현대자동차가 업계의 독점 지위를 이용해 사실상 자사의 '순정 엔진오일' 사용을 강요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순정 오일을 쓰지 않으면 무상 수리를 거부하는 '갑질'을 일삼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와 함께 이를 방지하는 정부·국회의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대차의 아반떼MD 소유주인 A씨에 따르면 정상적인 주행이 어려울 정도로 차량의 엔진오일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을 보여 현대차 정비사업소에 무상수리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엔진오일을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순정으로 교환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아반떼 AD 디젤을 소유한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는 구입한 지 1년 6개월 밖에 안된 자신의 차량이 주행하던 도중 갑자기 멈춰서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는데 현대차 측이 '순정 오일'을 이유로 엔진 보증수리를 거부 당했다.

A씨와 B씨는 “큰 돈 들여 구입한 차량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순정 엔진오일 보다 더 좋은 고급 합성유로 관리해왔는데 순정오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상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A씨의 경우 현대차의 1.6 GDI 감마 엔진의 내구성 문제를 차량 구입 전 인지하고 관리를 위해 독일 볼트로닉사의 엔진오일(5W30 규격)을 약 7000km마다 교환해 왔다. 볼트로닉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그룹 등 완성차 3사에 OEM 방식으로 순정오일을 납품하는 글로벌 업체다. 국내 자동차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독일 3사의 까다로운 품질 요구를 맞춘 프리미엄 엔진오일’로 알려져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내 윤활유 시장은 연간 약 2조5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최근에는 인터넷 유통경로를 통해 고급 합성유를 저렴하게 구입한 뒤 협력업체에 공임만 지불하고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방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 실제로 엔진오일 온라인 유통업체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약 100여개 브랜드의 다양한 엔진오일이 판매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엔진오일 온라인 유통업체가 판매하는 100여종의 엔진오일 브랜드 목록.

그런데도 현대차 측은 “엔진오일 교환은 순정부품 또는 제조사가 인정한 품질 이상의 엔진오일을 사용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오일 교환주기나 교환 여부, 엔진 오일의 품질 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별도로 교환 이력이 확인돼야 보증 수리 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순정 엔진오일을 쓰지 않았다고 무상 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라고 입을 모아 지적하고 있다. 

박병일 정비 명장은 “베이스유에 첨가제가 들어가는 방식의 엔진오일은 순정이 아니더라도 규격만 맞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현대차 측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순정오일이 특별히 더 좋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순정이라는 말은 양산차에 들어가는 부품이라는 뜻이지 최상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순정보다 더 좋은 엔진오일을 비싼 값을 들여 사용하고 있는데 순정이 아니라고 해서 무상 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억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소비자를 위한 전문가 집단이 제대로 없다보니 소비자가 ‘봉’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중심의 제도를 정비해 미국과 같은 강력한 징벌적 제도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2009년 공정위는 “현대차의 ‘순정품’이라는 표현이 법적인 용어가 아닌데도 이와 비슷하게 통용되며 마치 비순정품이 모두 성능상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인될 소지가 크다”며 '순정'이라는 표현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당시 업계 반발로 무산됐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도 '소비자를 기만하는 부당한 행위'라고 보고 있다. 서영진 YMCA 자동차안전센터 간사는 “순정 엔진오일만 사용해야 한다면 제조사가 사전에 소비자에게 공지했어야 하는데 일종의 소비자 기만”이라며 “개정된 자동차관리법이 내년 1월 시행되지만 아직도 소비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제도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도 “순정 엔진오일만 강요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결함의 원인이 제조사 책임이 확실하다면 소비자 탓으로 떠넘겨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정치권 역시 현대차의 ‘소비자 갑질’ 문제에 대해 공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현대차 세타2 엔진 결함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현대차로부터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사후조치 약속을 받은 뒤 더 이상의 문제 제기 대신 이행 여부를 지켜보기로 했다”며 “순정 엔진오일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무상 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독점구조를 등에 업은 갑질에 해당하며 더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박용진 의원실 측은 본지가 지적한 현대차의 순정 엔진오일 관련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소비자 피해사례가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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