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지종덕기자
  • 입력 2018.02.08 10:25
지종덕 취재부장

[뉴스웍스=지종덕기자]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의 시이다. 85세의 고은 시인이 마무리하며 인생의 말미에서 이제 그 꽃을 본 것같다.

최영미 후배시인이 ‘괴물'에서 문단의 대선배 En 선생의 추행을 고발하는 내용이 문단 뿐 아니라 각종 매체에서 떠들썩하다.

'# Me Too(나 역시 당했다)' 운동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거나 주어진 힘을 이용해 성희롱, 성추행 등 약자를 괴롭히는 자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운동이다.

원로시인 고은의 변명에 최영미 시인은  "구차한 변명"이라며  "그는 상습범이다.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문단 내 성추행의 진앙지 격이었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그의 시  ‘괴물’은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미투)/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라는 내용이다.

En은 문학계 거장 고은 시인을 지칭한 말이다.

과연 사실일까.

민족시인으로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자로 추앙받던 시인이 한 순간 성추행범이 돼버려  '내려갈 때 그 꽃'을 보는 노인네로 전락하게 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런 그를 군산시, 안성시, 수원시가 서로 모셔다가 집까지 제공하고 문학관까지 지어주려 했다.

기자가 살고 있는 수원의 각 학교 교가에는  '광교산 정기 받아'라는 가사가 단골로 들어가 있다. 광교산이 명산이기 때문이다.

인문학 도시를 자처하는 수원시는 지난 2013년 8월 이런 광교산 산자락에 집을 말끔히 단장하고 장안구 상광교동으로 전입한 고은 시인에게 제공했다. 고은문학관까지도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은 시인의  '기행(奇行)'이 알려지면서 수원시민들을 적잖은 실망감을 들게 했다.

집 근처에 주민들을 얼씬 못하게 하고 관리하는 시 공무원을 하인 부리듯 집 뜰 풀도 뽑게 하는  '갑질 이야기'가 일파만파 메아리가 되어 퍼졌다.

급기야 지난해 5월에는 뿔난 광교산 주민들이  "'무상거주' 고은 시인 떠나라"요구하며 시위까지 벌여 수원시와 지역 문학계를 놀라게 했다.

수원시가 고은 시인에게 준 특혜는 주택 리모델링을 위해 9억5000만원을 들인데 이어 최근 4년간 매년 1000만원이 넘는 전기료와 상하수도 요금을 내주고 있다고 한다. 시민 혈세를 쏟아 붓고 있다고 주민들은 분노한다.

지방자치시대에 각 자치단체들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유명 문학가를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 고창에는 폐교된 학교를 미당 문학관으로 개조해 관광객을 유치한다. 생가도 복원해 문학 애호가들이 찾고 있다.

정지용의 고향 옥천에도 정지용 문학관이 있고, 만해 한용운의 고향 홍성에도 만해 문학관이 있다. 이상화의 고향 대구에도 이상화 시인의 문학관을 따로 세우지는 않았으나 생가를 복원해 문학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심훈의 고향 당진에도 문학관이 있다. 소설가 김유정의 출생지인 금병산 실레마을에도 문학관이 있다.

그러나 생존해 있는 수원의 시인 고은과 화천의 이외수 소설가는 다소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2005년 춘천에서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에 자리잡은 이외수(72) 작가의 문학관이 지난해 여름께부터  '이외수 퇴거' 논란에 휩싸였다.

이외수 작가의 고향인 경남 함양에 이 작가의 집필실이 이미 마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이 작가가 화천을 떠나 함양으로 거처를 옮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원은 청렴의 도시이다. 청렴한 시민들이 건강한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무리 유명인사라도 예외는 없다. 고은시인도 청렴한 시민이기를 수원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안성에서 20여년 살았고 수원에서 4년여 거주하는 동안 주민들과의 친화에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고은 시인은 군산이 고향이다. 귀거래사! 군산시가 고은 시인이 마지막 머무를 거처이다.

명망있는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던 그 꽃'의 의미를 고향 군산시에서 되새겨 보며 후배 문학인과 고향 사람들에게 참된 시인으로 거듭 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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