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8.02.09 16:19
"좋은차 개발 아닌 상사 비위 맞춰야 인정...위기인줄도 모른다"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국내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현대기아차가 최근 심각한 실적 부진과 함께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내수 시장에서는 마땅한 적수가 없어 독과점 구조를 굳히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꾸준히 점유율이 감소하는 중이다. 이를 반영하듯 9일 코스피에 이전 상장된 셀트리온은 35조원의 시총을 기록하며 현대자동차(34조3631억원)를 제치고 3위에 올랐다. 현대차로서는 자존심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렇듯 현대차가 ‘뒷걸음질’을 거듭하는 이유는 중국의 사드 경제 보복도, 미국 자동차 시장의 침체도 아니다. 물론 외부 환경도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내부의 곪아가는 ‘군대식’ 기업문화와 단절된 소통구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익명성을 기반으로 회사와 업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블라인드’ 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해보면 현대차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현대차 직원들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근무하는데도 애사심이나 자부심 대신 불합리한 기업문화에 대해 입을 모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블라인드 앱에는 상명하복식의 꽉 막힌 군대문화와 ‘꼰대’ 상사들을 지적하는 현대차 직원들의 글들이 많다. 이를 견디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고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현대차에서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는 한 게시자는 "이직하니 막상 돈이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며 "돈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는 글을 올렸다.
또 한 대기업 직원이 올린 글을 보면 “현대차 직원들은 이 앱에서 다들 군대식 문화를 언급하며 회사를 떠나고 있다”며 “지금보다 보너스가 잘 터질 때도 다들 이직하려고 난리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현대차 직원은 “솔직히 지금 북미, 중국에서 고전하는 게 사드 보복과 원화가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누구나 알 것”이라며 “한치 앞 밖에 못 보는 미래에 투자하지 않는 경영층 리스크 때문에 (직원들이) 떠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블라인드 앱을 보면 소통을 하지 않는 군대식 ‘꼰대’ 문화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 다른 현대차 직원은 “다른 생각은 항명이라고 여기는 꼰대들이 너무 많다”며 “그나마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답이 없는 회사”라고 일갈했다. 같은 업계인 한국지엠의 직원도 이 앱에서 “현대차 본사에 가보면 진정한 군대 문화를 느껴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본사뿐만 아니라 현대차 생산직들의 세대 간 ‘노노(勞勞)갈등이 심각하다는 것도 업계의 공공연한 사실이다.
실제로 수년 전 개인적으로 알게 된 전직 현대차 디자이너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그는 “새로운 디자인을 임원진들에게 관철시키고 설득시키기까지 정말 힘들었다”며 “현대차에서는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더라도 임원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글이 있다. 이 게시글을 올린 현대차 직원은 “차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윗사람 일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면 더 낫고 차를 잘 만들기 보단 윗사람들이 좋아 할만 일을 하면 칭찬 받는다”고 꼬집었다. 불합리한 기업 문화 탓에 혁신 기술개발이 아닌 윗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 현대차 연구원이라고 밝힌 한 게시자는 “뇌를 비우고 열정을 없애고 나는 일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면 지낼 만 하다”며 “내가 개발한 차량의 성공이 아닌 회사와 노동력과 임금으로 계약된 갑을 관계라고 생각하면 괜찮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생각 대신 시키는 것만 하고 성취보단 버티다보면 버틸 만 하다”는 넋두리까지 덧붙였다.
이러한 기업문화는 현대차 뿐만 아니라 주요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의 직원 역시 “모비스는 비교가능한 모든 단어 앞에 ‘비’ 또는 ‘병신’을 대입해 생각하면 된다”며 “비효율, 비합리, 병신 같은 기업문화”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렇듯 내부적으로도 소통이 되지 않는데 고객들과의 소통이 될 리도 만무하다. 국내에서는 ‘현대차 100만 안티대군’을 필두로 불신이 쌓여가고 있는데 정작 현대차는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있다.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각종 결함(GDI 엔진‧에어백 등)이 밝혀지며 고객들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정작 현대차는 오히려 결함의 책임을 고객에게 떠미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결함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요구해도 “현재까지 정해진 것이 없어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돌아온다.
심지어 현대차는 언론과의 소통에도 소극적이다. 통상 보도자료 발송 시 어떤 담당직원이 보냈는지 이름과 개인 연락처를 함께 메일에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현대차의 보도자료에는 직원의 이름과 연락처는 온 데 간 데 없고 보도자료 텍스트와 사진뿐이다.
특히 신차 발표 등 주요 행사에서도 다른 기업들의 직원들은 더 궁금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며 명함을 건네는 것과 달리 현대차 직원들은 아예 명함조차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귀찮은 것은 안 하겠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등 최근 급격한 시장 변화에 직면했다. 직원들의 창의적인 생각이 자유롭게 공유될 수 있는 판을 펼쳐도 모자를 시점에 현대차의 경영진과 임원들은 소통 대신 승진과 출세에만 관심 있다. 소통이 없는 현대차의 낡아빠진 기업문화로는 미래 시장에 대응할 수도, 떠나는 인재를 붙잡을 수도, 고객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도 없다.
그래서 현대차를 보고 있으면 '끓는 물 속의 개구리'를 보는 것 같다. 서서히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물이 끓어오르면 결국 죽게되는 그 개구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