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2.13 19:15

전문가들 "한국지엠의 거래내역 공개 등 자구 노력 선행돼야"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준중형 세단 '올 뉴 크루즈' <사진제공=한국지엠>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최근 4년간 누적적자 약 2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한국지엠이 군산공장을 폐쇄하기로 한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지엠 본사의 한국 정부에 대한 지원 압박과 함께 ‘한국 철수’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지엠의 군산공장은 최근 3년간 가동률이 약 20%에 불과해 지속적인 공장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군산공장은 올 뉴 크루즈와 올란도가 생산되고 있지만 두 차종은 지난해 각각 1만5534대와 8067대 판매되는데 그쳤다. 이들 차종은 지난 1월에도 487대와 476대 판매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다. 경쟁력 갖춘 신차가 투입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고사(枯死)한 셈이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이번 조치는 한국에서의 사업 구조를 조정하기 위한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한 우리 노력의 첫걸음”이라며 “공장 폐쇄로 영향을 받게 될 직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지원 압박’이라고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미 예견된 군산공장 폐쇄는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엠의 계획대로 실행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배리 엥글 지엠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이날 “한국지엠과 주요 이해관계자는 한국에서의 사업 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한국지엠의 경영 정상화와 관련해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2월 말까지 이해 관계자와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2월 말까지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이 이어지지 않으면 ‘중대한 결정’인 한국 철수를 감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미 미국 지엠본사는 지난해부터 수익성이 낮은 유럽과 인도, 남아공 등에서 잇따라 철수하며 글로벌 구조조정을 단행 중이다. 특히 한국지엠은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정리한 카젬 카허 사장이 새로 부임하며 철수설에 휘말렸고 한국지엠의 2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철수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밝히면서 철수설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지엠의 철수를 막기 위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유상증자를 실행하고 회생에 실패할 경우 혈세만 낭비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며 “정부가 유상증자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형평성을 따지고 한국지엠의 내부적인 거래 내역과 투명한 장부의 공개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유상증자는 한국지엠의 자구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 거론되고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국 본사가 한국지엠으로부터 과도한 이자를 가져간다는 지적이 많을 정도로 경영구조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지엠의 자구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더라도 회생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한국지엠은 철수할 의사가 없다면 자금지원 방법을 비롯한 구체적인 경영정상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다고 해서 정상화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장기적인 측면에서 실익을 따져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군산공장을 폐쇄한 한국지엠은 2000여명에 달하는 공장 근로자들을 구조조정하기로 하면서 노조와의 갈등도 봉합해야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한국지엠 노조는 사측의 결정에 반발하는 입장문을 내놓고 "경영진은 우리나라의 큰명절을 앞두고 회사의 존립과 지속가능 경영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결정을 노조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군산공장 정상화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이어 "국민혈세를 지원해달라는 날강도식 자본 요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글로벌 지엠의 고금리이자, 이전가격 문제, 과도한 매출원가, 사용처가 불분명한 업무지원비로 한국지엠의 재무상태는 밑빠진 독이었고 노동자들의 고혈로 글로벌 GM의 배만 채워갔다"며 사측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노동친화적인 정부가 나서서 노사정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이번 기회의 국내 자동차 산업의 노사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노사가 함께 상생하는 밑그림을 그려야 한국지엠의 경영 정상화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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