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윤희 기자
  • 입력 2018.02.14 09:37

지방분권개혁의 한계와 개헌의 시급성

이재은 수원시정연구원장

2000년부터 지역에서 지방분권운동이 시작됐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유력 대선후보들과 지방분권개혁 협약도 맺었다. 노무현대통령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고 지방살리기 3대 특별법을 제정하며 지방분권개혁에 시동을 걸었고,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지방분권개혁을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 박근혜정부에서 의무보육이나 기초연금과 같이 대통령 공약사항을 정책으로 채택하고 그 실행을 지방정부에 강제시키면서(의무강제) 필요한 재원을 일부만 보전하여 지방재정을 압박하거나 지방재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감세정책을 일방적으로 실시해 모든 지방정부를 재정긴장상태에 빠뜨리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자치단체가 주민의 삶에 직결된 시범적 복지제도를 도입하려 하면 오히려 이를 저지하였고, 수원시 주차장조례와 같이 미래를 위해 좋은 조례를 제정해도 상위법의 규정이 없다고 무산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중앙정부가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 우리 헌법의 부실한 지방자치조항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헌법에는 지방자치 조항이 다음과 같이 단 2개 조항밖에 없다.

헌법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가장 명확한 규정은 지방의회 의원 선출조항 뿐이다. 단체장은 주민이 직선하지 않아도 된다. 지방정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이다. 권한은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라고 규정하여 매우 협소하고 추상적이다. 조례제정권을 허용했지만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고 울타리를 쳐놓았다. 나머지는 모두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즉 지방자치의 범주가 중앙정부의 시혜에 의해서 결정되도록 했다.

자치입법권·자치조직권·자치재정권이 모두 중앙정부의 법률로 규정하도록 되어 있다. 헌법조항의 부실한 규정을 근거로 중앙정부는 이제까지 국회의 통제를 받는 법률보다도 행정부의 자의적 통제가 가능한 시행령에서 구체적 내용을 정해왔다. 헌법에서 포괄적 위임금지의 원칙을 설정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법·지방재정법·지방교부세법 등 지방자치 관련법률을 보면 주요한 조항들이 모두 시행령으로 위임돼 있다.

이처럼 법령에 의해 지방자치의 범주가 결정되다보니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하급기관화하고, 지방정부의 자치조직권이나 자치재정권을 임의적으로 통제하여 지방정부의 손발을 묶어놓고 중앙정부만 쳐다보도록 만들어왔다. 게다가 자치사무는 총사무의 3할에 머물고 중앙정부의 국가사무를 위임사무형태로 지방에 강제하면서 2할에 불과한 지방세수입마저도 국가사무를 위한 재정지출에 동원해 대부분의 지방정부를 재정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중앙정부가 전국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지역문제까지도 모두 관여하다보니 중앙정부는 기능이 과부하 되어 있어 중요한 국가적 과제마저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지경에 놓여있다. 또한 전국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다보니 지방정부는 자율성과 혁신역량을 상실하고 피동적 역할에 머물러 있다.

그동안 다양한 지방분권개혁안이 제시되어도 중앙정부(국회와 행정부)는 입법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며 개혁에 소극적이었다. 그럼에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어느 야당의원은 지방분권개헌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를 향해 개별입법으로도 얼마든지 지방분권개혁을 할 수 있다는 부정적 발언을 일삼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 지방분권개혁이 왜 지지부진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이 결여된 반응이다. 지방자치 복원이후 20여년의 중앙정부 행태를 고려할 때 국회나 중앙부처의 자발적 입법으로 지방분권개혁이 실시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제는 매우 부실한 헌법의 지방자치규정을 근본적으로 고쳐 획기적인 지방분권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헌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명료하게 규정하고, 각각의 권한배분과 이에 걸 맞는 세원배분의 기본원칙을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권한배분은 유럽지방자치헌장에 명시된 보완성의 원리(principle of subsidiarity)를 반영해 주민생활에 직결된 권한은 기초자치정부에 우선배분하고 기초자치정부가 처리할 수 없는 사무·사업을 순차적으로 광역자치정부와 중앙정부에 보완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또한 자주재정권의 확충을 위해 세원배분을 포함한 과세자주권을 명시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지역 간 재정력격차의 조정의무를 부여하고, 위임사무에 대한 비용부담책임도 명시해야 한다. 또한 촛불혁명을 초래했던 공권력의 남용이나 대의민주주의의 파행을 비롯해 지역에서의 관료 및 토호세력의 폐해를 국민들이 직접 시정할 수 있도록 직접민주주의의 중요기제를 강화해야 한다. 예컨대 국민발안제와 국민투표제?국민소환제 등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골고루 도입해야 한다.

자본주의경제는 경제주체 간의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발전한다. 공정한 경쟁은 각 주체의 선택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지역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각 지역 주민과 지방정부에게 선택의 자유가 충분히 주어져야 지역 간 창의적 경쟁이 가능하고, 지역 간 창의적 경쟁은 지역의 혁신을 추동하여 국민경제 발전을 선도할 수 있다. 물론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경제주체를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하듯이, 지역 간 경쟁에서 뒤쳐진 지역도 최소한의 균질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지역발전정책과 재정조정제도로 보호해야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5명의 유력 후보자들이 모두 지방분권과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포함한 헌법개정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의 논의를 보면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정파적 이해득실이 우선하며 본질적인 개헌논의를 저해하고 있다. 지방분권개헌은 더욱 그러하다. 국회를 포함한 정치세력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에 몰입하고 있다. 중앙집권체제 하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집권카르텔은 지방분권개헌에 소극적이고 심지어 방해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에게 그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근간이며, 지역 간 창의적 혁신경쟁의 필수요소이다. 과부화된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지방정부와 재배분하여, 중앙정부는 전국적 과제를 담당하고, 지방정부는 지역적 과제를 담당하는 지방분권국가를 실현해야 한다. 지방분권형 헌법개정은 21세기 한국사회가 제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어 선진국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도 필수적 과제이다.

최근 SNS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방제에 버금가는 자치분권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이용하여 북한의 '고려연방제'에 빗대 이념공격을 전개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스럽다. 60년전 국민소득 87달러시절의 낡은 이념논쟁에 머물러있는 듯한 이들의 의식과 행동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든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국민의식수준이 폄훼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촛불혁명은 저열하고 부패한 특권의식과 낡은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람답게 살아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모든 국민의 명령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전되는 21세기에 한국사회도 선진사회를 향한 바람직한 사회규범을 담고 있는 헌법다운 헌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민의 관심과 역량을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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