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2.19 16:47

실직 근로자 고용대책 등 피해 줄일 방안 모색할 때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한국지엠이 최근 군산공장을 폐쇄한데 이어 한국에서의 철수를 무기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사실상 GM은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시작으로 창원과 부평공장 등 주요 사업장의 문을 닫고 한국을 뜰 채비를 하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한국지엠이 직영 서비스센터를 외주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한국 철수 이후 미국으로 데려갈 약 20%의 인력을 추리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지엠의 모기업인 미국 GM이 “2월 말까지 자금 지원을 하지 않으면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우리 정부를 압박한 것이 알려지면서 한국지엠의 철수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지엠의 노조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한국지엠 관련 기사의 댓글을 들여다보면 “한국지엠의 철수는 경영난에도 자기 밥그릇만 챙기던 귀족노조의 사필귀정‘이라는 식의 내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지엠의 진짜 부실의 원인은 고임금 저생산 구조가 아닌 비정상적인 거래구조 때문이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10월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카허 카젬 한국지엠 대표에게 "한국지엠의 매출원가율이 다른 국내 완성차업체 평균인 80%를 상회하는 94%"라며 "미국 지엠에 거의 원가로 모든 물량을 넘겨주는 제살 깎아먹기식 영업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 의원에 따르면 업계 평균인 80%의 원가율을 적용하면 6600억원의 당기순손실은 오히려 1조원의 흑자로 전환된다.

또 GM이 한국지엠으로부터 연이율 5%대의 높은 이자를 받고 있는 것도 경영난을 자초한 꼴이 됐다. 한국지엠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GM에 462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차입금 이자율 평균의 2배가 넘는 높은 수준이다. 지난 국감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던 지 의원은 “GM이 고리대금업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지엠의 경영 위기는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지엠은 경영난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인 신차 출시에는 관심이 없다. 신차가 나오더라도 한국 시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가격 정책과 상품구성으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SUV 시장이 급성장하는데도 라인업엔 소형 SUV 트랙스와 지엠대우 시절 출시된 ‘사골’모델인 캡티바가 전부다.

특히 지난 10월 출시된 올 뉴 크루즈 디젤은 경쟁차종인 현대차 아반떼 디젤보다 무려 424만원 비싼데도 오히려 사양과 성능은 뒤처져 뭇매를 맞았다. 이쯤 되면 한국 시장에 차를 팔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지엠의 주력차종인 트랙스, 말리부, 스파크. <사진=한국지엠>

특히 한국지엠은 국내공장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던 오펠 브랜드가 프랑스의 PSA에 인수되면서 유럽 수출길도 막혔다. GM으로부터 오펠을 인수한 PSA가 한국 대신 유럽 공장의 가동률을 높이기로 결정한 탓이다. 특히 한국지엠은 방패로 내세웠던 연구개발(R&D) 역할 마저도 중국 상하이지엠에 넘겨주면서 사실상 껍데기만 남았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GM은 ‘뽑아먹을 대로 뽑아먹고’ 가치가 없어진 한국지엠을 버리기 위해 일부러 고사시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GM이 우리 정부에 뻔뻔한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은 곧 다가올 지방선거를 이용해 그동안 기록한 적자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손을 털겠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02년 대우차를 4억달러(4300억원)라는 헐값에 인수한 GM이 지난 15년 동안 한국지엠에 총 투자한 돈은 1조원(인수가 포함)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업계는 GM이 한국지엠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최소 3조원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GM이 한국지엠을 투자와 육성의 대상이 아닌 ‘현금 ATM기’와 ‘재고처리장’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GM이 '먹튀'하기로 마음먹은 상황에서 정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자금 지원을 해선 안 된다고 본다. 노동친화적인 한국 정부가 한국지엠 관련 14만여명의 노동자들의 아우성을 외면하긴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국민 혈세 낭비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철수에 앞서 국내 근로자와 지역경제를 볼모로 끝까지 한 몫 챙기려는 GM의 의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망한 기업은 과감히 도려내고 사업장 매각 방안과 근로자들의 고용 대책, 협력사 피해 최소화 방안 등을 서둘러 수립하는 것이 더 큰 화를 막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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