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양민후 기자
  • 입력 2018.02.20 18:19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양민후 기자]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제약사들이 수천억원을 투자하며 치매 치료제 개발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일라이릴리의 솔라네주맙, MSD사의 베루베세스태트 등 유망했던 후보물질은 임상단계에서 치료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같은 실패가 거듭되자 치매 치료제 개발의 방향성이 애초에 잘못됐다는 지적과 함께 이를 증명하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최근 국제학술지 ‘NEJM’에 실린 미국 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치매환자의 뇌에서 발견되는 아미노산 축적물이자 치매의 주범으로 지목 받고 있는 ‘아밀로이드 반(Amyloid-beta)’을 제거하는 것이 치매환자 치료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여태껏 실패한 대부분의 치매 치료제는 아밀로이드 반을 제거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개발이 진행됐었다.

연구진은 간이정신상태검사(MMSE)에서 20~26점(만점 30점)을 기록한 경증치매환자 2129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실험에 참여한 노인들은 모두 알츠하이머로 인해 치매증세가 나타났으며, 연구진은 양전자방출단층촬영을 통해 이들의 뇌에 아밀로이드 반이 형성됐음을 확인했다. 이 연구는 일라이릴리의 후원으로 진행됐으며, 2016년 임상 3상에서 실패한 치매 치료제 후보물질인 솔라네주맙이 사용됐다.

연구진은 1057명에게 솔라네주맙 400㎎을 정맥투여했고, 1072명에게는 약효가 없는 주사제를 투여하며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나는지 지켜봤다. 두 그룹은 4주에 한번씩 주사를 맞았고 전체 연구기간은 76주였다.

80주차에 실시된 알츠하이머병평가척도(ADAS)에서 솔라네주맙을 맞은 그룹의 평균점수는 6.65였으며, 플라시보 그룹의 평균점수는 7.44로 큰 차이가 없었다. 알츠하이머병평가척도는 90점이 최고점이며, 점수가 높을수록 인지기능의 손상이 심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어 연구진은 두 그룹에게 간이정신상태검사를 다시 한번 치르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솔라네주맙을 맞은 그룹은 80주전보다 평균 3.17점 감소했으며, 플라시보 그룹은 3.66점 감소한 것으로 조사돼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간이정신상태검사는 30점이 만점이며 점수가 높을수록 인지력 손상이 덜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연구를 이끈 로렌스 호닉 교수(임상신경학)는 “뇌의 아밀로이드 반을 제거하는 솔라네주맙을 4주에 한번씩 맞는 것이 경증치매환자에게 큰 치료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도 ‘아밀로이드 반을 제거하는 것이 치매를 치료하는 방법’이라는 가설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알츠하이머 협회 제임스 핸드릭스 박사는 “솔라네주맙을 비롯한 많은 신약 후보물질들이 이 같은 가설을 바탕으로 개발됐지만 임상시험에서 성공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치매환자 중 30%는 뇌에서 아밀로이드 반이 발견되지 않는다”며 “이들이 임상시험에 참여할 경우 솔라네주맙과 같은 약으로 치료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치매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가 실패 혹은 포기를 선언한 제약회사는 국내외를 통틀어 12곳이다. 가장 최근에는 독일의 벵링거인겔하임사가 임상 2상에서 실패한 사실을 밝히며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화이자는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치료를 위한 신약을 더 이상 개발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화이자는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투자하던 예산을 다른 연구로 돌리고, 연구인력도 구조조정 하는 등 미련을 남기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치매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제약사들도 있다. 일라이릴리와 아스트라제네카는 ‘라나베세스태트(Lanavecestat)’라는 후보물질을 공동으로 개발 중이며, 로슈도 ‘간테네루맙(Gantenerumab)’ 등을 개발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치매국가책임제 실시 등으로 치매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정부는 2029년까지 치매와 관련된 연구개발에 1조1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어서 치매치료제 개발분야에서 국내제약사들의 선전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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